송석록의 생각 한편

정몽규·홍명보 물러나면 끝?…이대로면 한국축구 계속 ‘똥볼’만 찬다

입력 : 2026.07.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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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홍명보 전 감독이 6월 30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로 귀국하고 있다. 인천공항 | 이준헌 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홍명보 전 감독이 6월 30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로 귀국하고 있다. 인천공항 | 이준헌 기자

대한민국 축구가 깊은 침체에 빠졌다. 2026 북중미 월드컵 8강이라는 목표는 무색하게도 32강 진출 실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로 돌아왔고, 대표팀은 이렇다 할 환영 행사도 없이 인천공항을 통해 흩어졌다.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감독은 이미 물러났고, 문화체육관광부는 7월 6일 ‘K-축구 혁신위원회’까지 출범시켰다. 그런데도 국민이 안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이 바뀌어도 협회를 움직이는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같은 실패가 반복된다는 걸 이미 여러 번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건 대안 없는 비난이나 두 사람의 퇴장에 대한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한국 축구 거버넌스를 근본적으로 재건할 청사진이다.

■ 대한축구협회는 ‘대리인 문제’의 전형

축구협회가 보여온 파벌주의, 밀실 행정, 책임 회피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에 의하면, 주주(주인)가 경영자(대리인)에게 권한을 위임했을 때,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하면 대리인은 주인의 이익보다 사적 이익을 앞세우기 쉽고,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협회의 진짜 주인은 축구 팬과 국민이고, 지도부는 그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일 뿐이다. 이 구조 아래에서 가장 오래, 가장 큰 권한을 행사한 인물이 바로 정몽규 회장이었다. 그는 2013년 취임 이후 13년 5개월간 재임해 역대 최장기간 집권 기록을 세웠고, 장기 집권 속에서 협회는 국민과의 소통을 소홀히 한 채 의사결정을 독점해 왔다.

2023년 3월, 협회는 우루과이전 킥오프 한 시간 전이라는 시점을 골라 비위 축구인 100명 사면을 기습 사면 후 여론에 밀려 전면 철회했다. 결국 뒤집힌 결정이었다는 사실이 문제를 가볍게 만들지는 않는다. 애초에 국민 모르게 결정하려 했고, 반발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물러선 패턴 자체가 ‘감시받지 않는 대리인’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감독 선임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체부는 2024년 특정감사에서 클린스만·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발표했지만, 협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국회가 협회 관계자를 증인으로 부르는 청문회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77.6%, 감독 선임 절차를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응답은 87.8%에 달했다. 국민이 확인하고 싶은 건 대표팀 성적이 아니라 협회 운영의 투명성이라는 게 여론으로도 확인된 셈이다.

■ 해외 축구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나

독일은 2000년 유로 대회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을 겪은 뒤, 전국에 366개의 유소년 거점을 세우고 15년에 걸쳐 1000명의 코치를 통해 1만 4000명의 선수를 육성한다는 장기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 투자는 토마스 뮐러, 마누엘 노이어 같은 선수들을 길러냈고 2014년 월드컵 우승으로 이어졌다. 핵심은 ‘한 대회 성적’이 아니라 ‘시스템’에 베팅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J리그 출범 이후 협회는 대표팀·유소년 육성에, 리그는 독립적인 상업화와 재정 감독에 집중하는 구조로 역할을 나눠 서로 견제하게 했다.

잉글랜드는 2025년 ‘축구 거버넌스법’을 제정해, 정부가 축구협회(FA)를 직접 통제하는 대신 정부·리그 양쪽으로부터 독립된 ‘독립축구규제기관(IFR)’을 법으로 신설했다. 이 기구는 구단 재정 건전성과 오너 적격성만 감독할 뿐 감독 선임 같은 스포츠 고유 영역은 건드리지 않는다. 스페인에서는 2023년 여자 월드컵 시상식에서 선수에게 강제 입맞춤을 한 루이스 루비알레스 전 협회장이 결국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로부터 3년 자격정지를 확정받았다. 그를 끌어내린 건 정부가 아니라 선수단의 보이콧과 스포츠 자체의 독립 사법기구였다. 네 나라 사례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정부가 협회를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립된 제3의 기구나 장기 시스템이 견제와 육성을 맡았다는 점이다.

■ 한국형 대안과 현실적 제약

여기서 짚어야 할 냉정한 전제가 있다. FIFA 정관은 각국 축구협회가 정부의 부당한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실제로 정부가 협회를 강제 해산하거나 임원을 직접 임면하려 한 쿠웨이트,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그리고 2026년 6월 자격정지를 당한 네팔까지 예외 없이 제재를 받았다. 국내에서도 국회·문체부의 사퇴 압박에 FIFA·AFC가 “자율성을 확보하라”는 경고성 공문을 협회에 보낸 전례가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은 이미 이 딜레마를 의식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K-축구 혁신위원회는 애초 문체부 장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출범 당일 장관이 위원장직을 스스로 반납하고 대신 박지성(FIFA 이해관계자위원회 위원)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그 자리를 맡았다. 정부가 전면에 서는 대신 축구계 내부 인사와 국제기구 네트워크를 가진 인물이 개혁을 이끄는 구조로, 정확히 잉글랜드 IFR이 택한 방향과 같다.

다만 현실의 걸림돌도 뚜렷하다. 협회 정관 변경은 이사회·총회 의결에 더해 FIFA 승인까지 필요하다. 그래서 혁신위는 곧바로 정관을 고치는 대신, 우선 대한체육회의 ‘회장 궐위 후 60일 이내 선출’ 규정부터 개정해 개혁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단계를 밟고 있다. ‘10만 축구인 직선제’ 역시 법령·정관 개정의 물리적 시간과 선거인단 규모(프로·생활체육 포함 시 1만 명 이상) 문제로, 당장 다음 회장 선거부터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이미 확인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금 요구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선거인단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로드맵을 명문화하고, 이사회·총회 회의록 전문 공개와 외부 전문가·팬 대표 참여를 정관에 못 박아야 한다. 이는 정부 개입이 아니라 ‘보는 눈’을 늘리는 것이라 FIFA가 문제 삼는 제3자 지배와는 성격이 다르다. 학연·지연이 아닌 데이터와 포트폴리오에 기반한 기술위원회가 장기 전술 방향을 이끄는 분업 구조도 협회 내부 규정 개정만으로 가능해 외부 개입 논란에서 자유롭다. 무엇보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한시 기구인 혁신위의 권고안이 차기 집행부에서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정관 개정 논의 과정 자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

책임자를 규명하고 처벌하는 것은 개혁의 시작점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축구는 국민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 공공재이며, 이를 특정 세력의 사유물로 방치해 둔 대가는 뼈아팠다. 정몽규·홍명보 두 사람이 떠나고 혁신위가 첫걸음을 뗀 지금이야말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꿀 마지막 기회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투명하고 공정한 협회로 거듭나는 것, 그것만이 한국 축구가 다시 세계 무대로 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다.

송석록 경동대 교수

송석록 경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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