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과 5·18이 남긴 과제
박치형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특임교수 (전 EBS 부사장, 언론중재위원)
배재고 야구부의 이른바 ‘스타벅스·탱크데이’ 응원 구호 논란은 단순한 학교 운동부의 일탈이 아니다. 경기 중 광주일고를 상대로 사용된 응원 구호는 5·18 민주화운동을 연상시키며 지역 비하와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왔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해당 야구부에 중징계를 내렸다. 일부 학생들은 “5·18을 조롱하는 의미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바로 그 해명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드러낸다. 학생들이 민주주의의 역사인 5·18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학생 개인보다 우리 사회의 역사교육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5·18 민주화운동은 특정 지역의 역사가 아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은 국가 권력의 폭력 앞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들의 희생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인권, 지방자치와 시민의 권리는 수많은 희생과 연대 위에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5·18은 광주의 기억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함께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민주주의의 역사이다.
그럼에도 일부 청소년들은 5·18을 인터넷에서 소비되는 밈이나 유행어 정도로 받아들이거나, 왜 특정 표현이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단순히 학생들의 역사 인식 부족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 역사를 시험을 위한 암기 과목으로 가르치고, 민주주의의 형성과정을 오늘의 삶과 연결하지 못한 교육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역사를 배우지 못한 세대는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할 기회를 잃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교육위원회가 추진하는 국가교육과정 개정은 시의적절하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비중을 기존 약 20%에서 30% 이상으로 확대하고, 고등학교에 ‘역사 콘텐츠 비평·분석’ 과목을 신설하려는 것은 단순히 교과서 분량을 조정하는 차원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 대한민국 정부 수립,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을 균형 있게 배우고,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되는 역사 왜곡과 허위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개혁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근현대사의 비중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이다. 5·18을 연도와 사건만 암기하는 교육으로는 민주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 학생들은 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국가 폭력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협했는지, 그리고 그 희생이 오늘 우리의 자유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배우고 토론하며 성찰해야 한다. 역사교육은 과거를 외우는 교육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배우는 교육이어야 한다.
학교 스포츠도 예외일 수 없다. 운동부는 경기력을 키우는 곳인 동시에 공동체 의식과 시민의식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승리를 위해 상대를 조롱하거나 역사적 비극을 응원 도구로 사용하는 문화는 스포츠 정신에도 어긋나고 교육의 목적과도 양립할 수 없다. 학교는 선수들에게 기술만이 아니라 역사 인식과 인권 감수성,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배재고 야구부 사태는 학생 몇 명을 징계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미래 세대에게 어떤 역사를 가르치고, 어떤 민주주의를 물려주고 있는지를 되묻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국가교육과정의 개편 역시 교과서의 분량을 늘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학교 현장에서 역사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고, 교실과 스포츠 현장, 디지털 공간까지 연결되는 교육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그 취지가 살아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기억 위에 세워진다. 기억을 잃은 사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역사를 잊은 공동체는 미래를 지켜낼 힘을 잃는다. 5·18 민주화운동은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민주주의의 토대이며, 미래 세대에게 반드시 전해야 할 헌법적 가치이다. 이번 배재고 야구부 ‘스타벅스·탱크데이’ 논란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과제는 분명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역사교육이 아니라 더 깊은 역사교육,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더 성숙한 민주시민교육이다. 5·18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가르치는 일은 과거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