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홈, 멀티 장르(Multi-home, Multi-genre)
사진제공|산토스 브라보스·하이브 라틴아메리카
지난 프롤로그에서 예고한 K팝 퍼포먼스의 여정을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작해 보겠다.
K팝의 정교한 시스템이 라틴의 언어와 리듬을 만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그 변화는 과연 새로운 퍼포먼스가 되고, 또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에도 1980년대 사회적 현상을 일으킨 메누도(Menudo)와 같은 아이돌은 있었다. 그러나 하이브(HYBE)가 가져간 것은 또 하나의 보이그룹이 아니다. 체계적인 연습생 과정과 정교한 퍼포먼스, 특화된 비주얼과 팬덤 콘텐츠까지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시킨 K팝의 제작 방식이다.
첫 번째 실험인 산토스 브라보스(SANTOS BRAVOS)는 하이브가 지난해 멕시코에서 선보인 K팝식 트레이닝 기반의 라틴 프로젝트다. 방시혁 의장은 이를 ‘멀티 홈, 멀티 장르(Multi-home, Multi-genre)’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즉, K팝의 뿌리는 한국에 두되 각 나라의 문화와 만나 새로운 K팝으로 진화해 가는 의미로 읽힌다.
미국 대중매체 틴 보그(Teen Vogue)와의 인터뷰에서 멤버 알레한드로(Alejandro Aramburú)는 매일 K팝 방식으로 훈련하며 춤과 노래, 퍼포먼스를 익혀 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K팝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규율’을 가르쳐 주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일하고 시간을 관리하며, 팬들을 위해 더 나은 아티스트가 되어야 하는지를 배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멤버 가비(Gabi Bermúdez)의 한마디였다. “We are still in the process of being understood by the Latin audience.” (“우리는 아직 라틴 대중에게 이해받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문구는 프로젝트의 현재를 보여준다. 실제로 산토스 브라보스는 발표곡과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라틴 대중의 이해와 공감을 넓혀가고 있다.
브라질리언 펑크를 기반으로 한 ‘VELOCIDADE’와 감성적인 라틴 발라드 ‘FE’를 잇달아 선보였고,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비하인드 듀얼(Behind DUAL)’, 스페인어 예능 ‘바모스 브라보스(¡VAMOS, BRAVOS!)’까지 공개하며 라틴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팬들의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너무 K팝 같다.”
“평범한 라틴 팝 같다.”
“정체성이 아직 선명하지 않다.”
어쩌면 이 상반된 반응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가 태어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문화는 강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해의 시간을 통과하며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K팝은 결국 퍼포먼스로 완성되는 예술이다. 그리고 춤은 몸으로 기억하는 문화다. 그래서 K팝이 라틴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규율’ 위에 ‘존중’이 더해져야 한다. 그렇게 언어와 리듬, 몸의 표현이 K팝 퍼포먼스와 자연스럽게 융합될 때, 라틴 사람들은 그것을 K팝의 복제품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K팝 역시 그렇게 성장했다. 미국의 팝과 힙합, 일본의 아이돌 문화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언어와 정서, 퍼포먼스를 더하며 새로운 문화로 다시 태어났다. 어쩌면 이것이 ‘멀티 홈, 멀티 장르(Multi-home, Multi-genre)’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K팝의 성공은 모두가 같은 춤을 추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문화가 K팝을 자신들의 언어와 몸으로 다시 만들어가는 데 있다. 그리고 라틴 K팝이 성공할수록 세계는 K팝의 근원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Cookie Scene
(영화의 쿠키 영상처럼, 컬럼이 끝난 뒤 이어지는 못다 한 이야기.)
‘레오 강의 K팝 댄스’는 태양과 열정의 라틴아메리카를 지나, 두 번째 목적지인 필리핀으로 향하고 있다. 다음 여정은 P팝이다.
(재) 좋은예술문화재단 ‘공연과 사람’ 연구소장 | 레오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