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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지구 환경 문제의 선구자 ‘조약돌 할아버지’

조약돌 할아버지 표지

조약돌 할아버지 표지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일본 역사를 41부작으로 정리한 적 있다. 그 가운데 한 부를 ‘일본 시민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나카 쇼조에게 할애했다.

다나카 쇼조는 19세기 후반 메이지 일본의 성장을 이끈 아시오 구리광산에서 광독(鑛毒: 광물을 채굴·제련할 때 나오는 폐수·매연 속에서 생기는 해독) 오염수 유출이 계속되면서 광산 아래 와타라세강 기슭이 심각한 피해에 시달리자 6선 국회의원의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이후 그는 광독으로 고통받는 이들 속으로 들어가 1913년 생을 등질 때까지 와타라세강 기슭의 야나카마을에서 살며 싸워 나갔다.

아시오 광독 사건은 당시 동아시아 최대의 구리광산으로 꼽히던 아시오 광산에서 벌어졌다. 일본 최초로 벌어진 당대 최대의 공해 사건이었다. “공공의 이익을 해친다”는 의미의 ‘공해(公害)’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이들이 바로 아시오 광독 피해자다.

이후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가 산업사회로 빠르게 접어들었고, 산업사회 폐해로 인한 피해도 닮아 갔다. 진일보한 기술 뒤에, 편리한 전자기기 뒤에 가려진 슬픔의 다른 이름 ‘공해’를 지금 한·중·일이 같이 사용하고 있다. 즉 동아시아 환경운동의 출발점에 아시오 광독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

일흔하나가 되던 해인 1911년부터 다나카 쇼조는 ‘세계의 원주민’이라는 말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110여 년 전부터 드넓은 시야로 세계를 내다보며 지구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고자 한 것이다. 지구 환경 문제의 선구자였던 셈.

다나카 쇼조가 온 힘을 다해 싸웠던 아시오 광독 사건은 이후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수많은 국가폭력과 공해사건의 ‘원본’이 된다. 그 세부 내용에 소소한 차이가 있지만 이윤에 눈이 먼 기업, 끈끈한 정경유착으로 인한 정부의 ‘적극적인’ 묵인과 방조, 양심을 저버린 전문가 집단, 과학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여론 조작과 호도, 위장된 해결로 인한 피해 확대, 진실 규명을 최대한 늦추고 책임을 조금이라도 축소하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마지막 안간힘까지, 큰 얼거리는 복사판처럼 흡사하다. 다나카 쇼조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분투와 외침이 조금도 낡지 않은 채 여전히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에서도 아시오 광독 사건을 닮은 ‘비극’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되풀이되는 참극을 막고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서는 ‘풀뿌리 민중의 삶을, 자치의 뿌리인 마을을, 가없이 베풀어 주는 자연의 은혜로움을 지키는 것이 곧 국익이고 문명’이라고 여겼던 다나카 쇼조의 발자취를 배울 필요가 있다. ‘조약돌 할아버지’(사에 슈이치 지음 / 김송이 옮김 / 김강언 그림·만화 / 상추쌈)가 그에 딱 맞는 책이다.

이 책은 지구촌 전체가 가파른 성장을 위해 더욱 내달리고, 사사로운 눈앞의 이익을 위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슴없이 공익을 해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이때, 한평생 올곧은 태도로 공공한 삶을 일관한 한 사람의 일대기를 건넨다. 저자는 청소년들을 배려해 다정한 문장으로 쉽고 간결하게 썼지만, 그 내용의 깊이는 어른들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한평생 자치와 인권,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위해 헌신한 다나카 쇼조의 올곧은 걸음이 독자들의 가슴에 뚜렷한 족적을 남길 만하다.

특히 다나카 쇼조의 다양한 면모 가운데 시민 불복종 운동과 환경운동의 출발점으로서 뚜렷한 자취를 남긴 대목을 찬찬하고 깊이 있게 그렸다. 그 삶의 무게에 마냥 압도되지 않고, 균형과 현재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 대목도 눈길을 끈다. 굵직하게 뻗은 갈래만도 쉽사리 가늠하기 힘든 거인의 삶을 단정한 글 속에 선연하게 펼쳐 놓은 노작가의 원숙함이 또래 친구들과 이 이야기를 잇고자 애쓴 10대 화가의 사풋한 그림을 만나 독자들을 단숨에 다나카 쇼조의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조금이라도 사람 목숨에 해가 된다면, 조금쯤은 괜찮다고 말하지 말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여전히 싸우고 있는 지금,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로 분노와 시름이 더없이 깊어지는 지금, 다나카 쇼조의 이 한마디는 우리 앞을 비춰주는 한 줄기 빛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