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되는 가운데 동성 연인과 키스한 미국 선수, 스켈레톤을 타고 내려오는 흑인 선수들, 눈과 얼음이 없는 적도의 나라에서 출전한 선수들, 태극기를 달고 설원을 누빈 푸른 눈의 한국인들까지…. 아마 평창 동계올림픽을 눈여겨본 사람들은 낯설고 신기한 장면들에 깜짝깜짝 놀란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 장벽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동계올림픽을 그들만의 잔치로 만들었던 성과 인종, 성적 지향성, 기후, 돈, 선입견의 벽들이 무너지거나 낮아지고 있다. 더 이상 동계올림픽은 특정 지역, 특정 인종, 특정 성, 특정 계급만을 위한 잔치가 아니다.

평창 올림픽은 동계올림픽의 다양성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으로 성취한 올림픽으로 기억될 것 같다. 지금까지 동계올림픽은 추운 부자 나라의 백인들이 지배해 왔다. 눈과 얼음이 없는 나라들에 동계올림픽은 그저 눈으로만 즐기는 스포츠였다. 가난도 벽이었다. 동계스포츠는 비싸고 전문화된 장비를 갖춰야 하는 종목들이 있다. 전 세계에서 봅슬레이와 루지, 스켈레톤 트랙은 20개도 안된다. 대부분은 유럽에 있다.

나이지리아의 시미델레 아데아그보(37)는 아프리카에서도 이 모든 장벽들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평창에서 보여줬다. 그는 올림픽 스켈레톤에 출전한 최초의 아프리카 선수가 됐다. 아데아그보는 “벽을 부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를 위하여, 아프리카를 위하여.”

아프리카 8개국에서 13명의 선수가 출전한 것은 역대 동계올림픽 최대 규모였다. 인종의 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봅슬레이 여자 2인승 시상식에서 두드러졌다. 6명 중 4명이 흑인이었다. 이런 다양성은 국제적인 흐름이다. 조던 그린웨이는 미국 남자 하키대표팀에서 98년 동안 견고하게 유지돼 왔던 피부색의 벽을 마침내 깨뜨렸다. 동계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에콰도르와 에리트레아, 코소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나이지리아는 동계올림픽의 지평을 그만큼 넓혔다.

92개 출전국 선수단에서 여성 비율이 42%나 되는 것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924년 샤모니 동계올림픽 때는 겨우 4%였다. 한국도 다양성 확대의 예외가 아니다. 이번 올림픽에 총 19명의 한국 귀화 선수들이 출전했다. 이들이 있어 한국의 겨울 스포츠도 더 다양해질 수 있었다. 윤성빈(24)이 아시아 최초로 스켈레톤에서 우승한 건 우연이 아니다.

지난 16일 멕시코의 헤르만 마드라소는 크로스컨트리 남자 15㎞ 프리에서 참가선수 116명 중 꼴찌로 골인했다. 금메달을 차지한 다리오 콜로냐(스위스)보다 무려 25분이나 뒤졌다. 하지만 마드라소는 외롭지 않았다. 그가 골인하는 순간 같이 경쟁했던 선수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무동 태워주었다. 통가, 콜롬비아 등 눈을 보기 힘든 나라에서 온 선수들이었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를 추구하면서도 인류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올림픽 정신의 구현. 다양성 올림픽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