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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작품의 복원을 둘러싼 구세대와의 화해②
오르세는 그리고 이러한 복원 작업은 박물관의 기본 임무 중 하나인 작품의 보존과 새로운 가치의 발견이라는 정책의 틀 안에서 수행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작품들은 자체적으로 손상이 심해서 실체가 잘 안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고, 면밀히 연구된 적이 없기 때문에 숨겨진 비밀이나 특징들이 뒤늦게 발견되는 사례도 있었다. 그 때문에 이런 복원 작업은 작품의 재평가 면에서 중요하다. 피에르 르우(Pierre Lehoux)의 ‘성 라우렌시오 순교’는 오르세 내부에 공간을 마련해서 관람객들이 실제 복원 장면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택했다. 방문객들은 프랑스 박물관 복원 센터의 전문가의 지휘 아래, 길고 세밀한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찰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그림의 주인공 라우센시오는 초기 기독교의 순교 성인이었다.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에게 신앙을 이유로 박해받고 고문당해 죽음을 당했는데, 살아있는 채로 석쇠에 의해 구워지는 ... -
그림 한 작품의 복원을 둘러싼 구세대와의 화해①
박물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은 모두 세월이 지나면 조금씩 복원과 관리가 필요한 시점을 맞게 된다. 시간이란 항상 그렇게 보존하고 싶은 모든 대상을 시험한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근래 10여 년 정도 이렇게 관리가 필요한 작품들을 일반 관람객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기부를 통해서 복원 작업을 실행하는 이벤트가 종종 열린다. 2017년 오르세미술관 역시 자신들의 컬렉션 중 한 작품을 선정해서 복원 이벤트에 들어갔다. 19세기 유명한 역사 화가였던 피에르 르우의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라는 그림이다. 오르세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 미술관의 목표는 19세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장 초기에는 주로 19세기 후반 예술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었던 인상주의 그림들을 보다 넓고 적합한 장소에 전시하는 것이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오르세는 19세기 전체에 관심이 있었다. 새 시대의 예술이 등장하게 만들었던 기존 예술계의 수구성. 그리고 그 전통... -
카미유 피사로 ‘양치기 소녀’
1874년 프랑스 파리에 있었던 사진 스튜디오 나다르에서 이후 서양 미술사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전시회가 열렸지만, 당시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시회 명칭도 정해진 것이 없어서 ‘무명 예술가 협회의 전시회’라고 이름 붙였던 이 행사는 나중에 ‘인상주의 1차 전시회’라고 평가받게 된다. 시작 때만 하더라도 참가한 작가들을 부를 명칭이 없었기 때문에 무명이라고 했으나, 이 속에는 우리들이 다 아는 화가들이 섞여 있었다.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30명에 달하는 작가들의 그림은 제각기 달랐지만, 이후에 남는 자와 떠나가는 자들을 통해서 이 모임의 성격은 기존 전통 회화에 대항하는 작가들의 연합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 멤버들 속에서 오늘의 그림을 그린 카미유 피사로가 나온다. 또 하나의 위대한 화가 폴 세잔은 자신이 신인 화가 입장으로 불안 속에 그 경력을 이어나갈 때, 자신에게 용기를 준 사람으로 카미유 피사로를 언급하면서 이야기 했다.... -
에드가 드가 ‘무용 수업’
모더니즘 시대 이후로 그림들을 구입하는 개인들이 늘어감에 따라 몇 가지 변화가 생기게 된다. 국가 주도의 대형 그림들은 여전했으나, 사이즈가 작아지고, 좀 더 가벼운 주제의 그림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전통을 지키고, 형식에 충실한 그림들이 아카데미 체제하에서 나오던 것과 비교하면 가벼운 주제, 풍경이나 동시대의 도시의 모습을 그리는 방향으로 바뀐 것을 우리는 인상파의 등장과 함께 목격할 수 있다. 에드가 드가. 발레리나의 화가로 알려진 드가는 인상파 화가의 대열에 분명히 함께 하면서 거의 모든 전시회에 참가했으나, 그는 다른 인상파 화가 동료들과 집안 배경이 달랐고, 따라서 받은 교육과 경력에서도 차이가 났다. 새로운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욕 때문에 아카데미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법보다 혁신적인 길을 독학하고, 에두아르 마네 같은 개혁가들과 교류를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상파 작가들과 같이 묶여 있는 것은 그의 야망과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조금은 이질적인 인물이... -
모리스 드 블라맹크 ‘부지발의 라 마신 레스토랑’
모리스 드 블라맹크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20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나타났던 야수파 운동의 중심이었던 인물인데, 여러 부분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사람입니다. 1876년 파리에서 태어난 블라맹크는 아버지가 바이올린 연주가, 어머니가 피아니스트 였습니다. 그리고 여동생은 한때 영화에 등장하는 스타이기도 했습니다. 원래부터 예술가 집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블라맹크의 시작은 화가가 아니라 음악가, 특히 바이올린 연주가로서 였습니다. 음악가 집안이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생계를 바이올린으로 끌고 갔습니다. 미술은 모든 것을 독학으로 공부했구요. 그런데 뒤늦게 취미로 시작한 미술이 나중에는 프랑스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시킨 것이죠. 또 한가지 재밌는 이 사람의 일면은 생활비에 많은 부분을 연주가외에도 전문 자전거 선수로 활동하면서 얻은 상금으로도 충당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나키스트 그룹에 심취해 어울리기도 했고, 외설 소설의... -
앙리 팡탱 라투르 ‘바티뇰의 아뜰리에’
사진이나 영상등이 아직 자리 잡기 전, 여전히 그림이 기록과 기억을 담당할 때, 가끔은 그 그림들이 오히려 더 분위기를 잘 전달할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인물들을 깊이 있게 묘사한 초상화들은 오히려 사진보다 더 주인공에게 다가서는 느낌이 들도록 하죠. 집단 초상화는 어떨까요? 단체의 회원이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주문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집단 초상화는 렘브란트 등의 작품에서도 보이듯이 네덜란드에서 주로 유행했는데, 19세기가 되면서 유럽 전역에 가끔 등장하게 됩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그림은 초상화와 정물화에 뛰어난 그림을 많이 남겼던 화가 팡탱 들 라 투르(1836~1904)의 ‘바티뇰의 아틀리에’라는 그림입니다. 여기서 바티뇰이라는 것은 파리 17구에 있는 길 이름이었지만, 이 그림에서는 특별히 그 길에 위치했던 화가 에드와르 마네의 아틀리에가 있는 곳입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1860년대에 마네의 아틀리에... -
카미유 피사로 ‘붉은 지붕들, 마을 어귀, 겨울의 효과’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서 우리들이 받는 느낌은 지금도 밝고 따뜻하고 평안한 풍경이 펼쳐져 있는, 어떤 복잡한 지식이나 분석이 없어도 보고 있기에 불편하지 않은 그림이라는 것일 듯 합니다. 인상파가 처음 등장하면서 서양 미술의 전통과 대립하고, 과학적인 분석으로 빛의 효과를 파악해서 자연에 대한 근대적인 해석을 했다는 미술사적인 설명보다 우리 눈에 편하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라는 말이 훨씬 더 이해가 가는 편입니다. 그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도 카미유 피사로는 그림도 그렇지만, 성격도 가장 편안하고 온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도 이 성격이 드러나고, 그가 다른 인상파 작가들과 교류하는 일화들 속에서도 항상 다른 작가들에게 위로를 해주거나, 힘이 나게 해주는 관심을 보이는 보기 드문 예술가였습니다. 오늘은 그의 작품을 소개해드리는데, 제목부터 상당히 우리 시대하고 비슷하죠. 붉은 지붕들, 마을 어귀, 겨울의 효과라니 19 세기에 어울리진 않는 셈이니까요. ... -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오르세 1층 끝 방에서 이 그림을 발견하게 되면 사람들은 많이 반가워합니다. 아 이 그림 알아!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죠. 그러면서 이 그림이 그렇게 유명한 이유를 알고 싶어 하게 됩니다. 오늘의 그림은 ‘최초의 모더니스트’라고 불리기도 하는 에두아르 마네의 대표작 <올랭피아>입니다. 올랭피아란. 오달리스크라는 말처럼 동양-여기서 동양이란 아랍 세계를 의미-풍의 노출이 심하고 장신구를 화려하게 착용한 거의 나체의 여성이 역시 동양적인 배경에서 그 육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오리엔탈리즘 계통의 그림을 뜻합니다. 식민 침략 시절이나 제국주의 시절, 서양인들의 욕구는 그렇게 발현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려지던 그 그림의 제목과 같은데 이 그림은 뭔가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다름 때문에 그림을 그린 작가는 전례 없는 비난을 받았고, 그 다름 때문에 그 비난은 이후에 영예로운 훈장같이 변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1890년, 클로드 모... -
장 레옹 제롬 ‘닭싸움’(닭을 싸움 붙이는 젊은 그리스인)
모든 관람객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저는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여주인공의 정면 얼굴이 좀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좀 이상하게 그린 거 같애” 라는 느낌이 들었죠. 하지만 다가가서 가까이 그림을 보게 되면서 여주인공 정면 모습의 어색함을 상쇄하는 여러 가지 놀라운 점들이 보였습니다. 피부색의 묘사와 근육 그리고 투명함에 가까운 옷의 표현과 닭의 생생함등이 눈에 들어오면서, 예술적으로 훌륭한지는 모르겠지만, (미술관에 걸려 있으니 당연히 훌륭하겠지 라는 게으른 판단) 기술적으로는 진심으로 감탄했던 작품입니다. 아직도 주인공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요. 작가는 장 레옹 제롬.이 화가를 설명할 때 따라오는 여러 이야기들은 19세기 후반의 유럽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고 격렬하게 대립하는, 그리고 끝내 모더니즘이 승리하고 변화로 귀결되는 시대가 19세기 후반이었습니다. 원래 장 레옹 제롬은 19세기는 물론이고 20세기 초반까지도... -
마세크 ‘예언자 리뷰즈’
미술관에 걸려있을 정도의 그림이라면 웅장하고 아름다울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림은 그런 기대와 다르죠. 크기도 있는 데다 어둡게 처리된 배경 색에 뭔가 신비하면서도 섬뜻한 눈빛의 주인공을 마주하는 순간은 꽤 기억에 남습니다. 그림의 강렬한 주인공은 체코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여성 예언자, 그리고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여왕이었던 리뷰즈는 700~738년 체코 프라하에서 왕국을 세워 통치를 했던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자칫하면 조각조각 분열될 뻔했던 이 지역에 처음으로 통일되고 광대한 영토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죠. 그 때문에 체코의 예전 이름인 보헤미아 왕국은 리뷰즈부터 시작합니다. “화가 마세크는 보헤미아 문화와 프라하를 세운 전설적인 예언자를 표현하기 위해 아마도 그가 파리에 머물면서 살펴봤던 엄숙한 마리안느나 영웅적으로 묘사된 성녀 주느비에브를 참고했을 것이다. 화가는 그의 백성과 마법의 영역이었던 신들 사이를 중재하던 여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