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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물 한잔 드세요~” 말 한마디에 전해지는 마음
2015년 봄에 1학년이던 그 아이를 처음 만났다. 그 아이에 대한 첫 기억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마냥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였는데, 특정 음식만 먹고 폭식을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며 어머니와 통화했던 것이다. 이후로는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해서인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한 통통하고 개구진 모습의 그 아이가 나는 좋았다.그해 여름 어느날 사건이 일어났다. 좋아하는 피카추 캐릭터를 프린트해서 색칠하고 오려서 집으로 가져가 어머니에게 자랑하는 게 일상의 즐거움인 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어머니를 기다렸다.그날따라 가위질이 서툴러서일까? 캐릭터를 그만 잘못 오려 버렸다. 속상한 아이는 1시간가량 물건을 던지고, 벽을 뜯고,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들의 어떠한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주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서럽고 불편했던 마음까지 쏟아내며 속상해하는 아이를 달래도 보고 얼러도 보고, ... -
서로 돕고 함께 나누는 ‘고사리 봉사단’
우리 센터는 학교 밀집 지역에 위치해 지역사회연계사업을 진행하기에 수월한 지역적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지역사회연계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중 ‘고사리 봉사단’ 활동을 소개하려고 합니다.‘고사리 봉사단’은 2018년부터 성남시 중원구 내 지역아동센터 4곳이 연합해 연 4회 정도 각 센터 주변 환경정화를 하고, 연 1~2회는 연합 활동으로 지하철 역사 주변 청소를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연합 활동이 점차 감소하다가, 결국 센터별로 활동 지속 여부를 결정하게 됐습니다.우리 센터에서는 아이들과 의논해 ‘고사리 봉사단’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센터만의 ‘고사리 봉사단’ 활동을 하게 되자 아이들은 더욱 체계적으로 활동을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우선 봉사단의 활동 목적을 늘 보살핌을 받고 지원받는 수동적인 위치보다는 내가 지키고, 돕고, 함께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뜻을 담아 ‘서로 돕고 함께 나누자’로 결정했습니다. 또 아이들... -
코로나19의 소용돌이를 헤쳐온 지역아동센터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지난 3년 힘들었다. 하지만 돌봄이 꼭 필요한 친구들에게는 긴급돌봄을 통해, 가정에서 머무르는 친구들에게는 도시락 배달을 하며 끝까지 센터 문을 열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학교는 문을 닫고 아무도 경험하지 못하던 비대면 교육을 시행했다. 학교마다 다른 온라인 수업 방식과 ID 생성부터 디지털 도구를 다루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은 지역아동센터의 아동들은 출석조차 힘든 경우가 많았다. 특히 조손·다문화·한부모 등 결손가정의 친구들은 케어를 받기 힘들기 때문에 학교 담임선생님과 소통하며 ID를 생성하고 출석을 위한 과제까지 지역아동센터에서 함께했다. 그나마 센터에서 긴급돌봄 서비스를 받는 아이들은 이런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가정에서 돌보는 아이들은 장기화되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교육격차가 더 커져만 갔다. 이 때문에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가정에서도 센터의 교육 서비스를 받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 -
개구쟁이 까칠이와 친구가 된 즐거움
처음 만난 까칠이(가명)는 사방을 투명 방패로 막고 몸은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다. 말 한마디에 ‘펑~’ 하고 튕겨 나갈 것처럼 숨죽이고 있는 모습은 ‘똑똑’ 문을 두드리게 했다.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매번 등을 지고 학습에 참여했다. 띄엄띄엄 단어를 읽을 수 있으나 글쓰기는 아예 시도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 까칠이의 비밀은 학교 받아쓰기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까칠이 어머니가 센터로 도움을 요청하면서 알게 됐다. 수를 세고 셈하기는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학습이라는 방식으로는 거부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나답게 크는 아이 지원사업의 프로그램 자체를 거부한 채 놀이에만 관심을 보이고, 감정을 말로 하지 않고 온몸으로 거칠게 표현했다.까칠이를 찾아서 같이하는 시간은 매 순간 나에게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괜찮을까?’ 하면 화를 내고, 가르쳐 주려고 하면 의자와 책상을 발로 차서 밀어냈다. 하지만 만들기, 새로운 놀이, 탐구활동에는 관심을 보이고 툴툴대면... -
개구쟁이 까칠이와도 친구가 됐다
처음 만난 까칠이(가명)는 사방을 투명 방패로 막고 몸은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다. 말 한마디에 ‘펑~’ 하고 튕겨 나갈 것처럼 숨죽이고 있는 모습은 ‘똑똑’ 문을 두드리게 했다.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매번 등을 지고 학습에 참여했다. 띄엄띄엄 단어를 읽을 수 있으나 글쓰기는 아예 시도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까칠이의 비밀은 학교 받아쓰기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까칠이 어머니가 센터로 도움을 요청하면서 알게 됐다. 수를 세고 셈하기는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학습이라는 방식으로는 거부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나답게 크는 아이 지원사업의 프로그램 자체를 거부한 채 놀이에만 관심을 보이고, 감정을 말로 하지 않고 온몸으로 거칠게 표현했다.까칠이를 찾아서 같이하는 시간은 매 순간 나에게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괜찮을까?’ 하면 화를 내고, 가르쳐 주려고 하면 의자와 책상을 발로 차서 밀어내었다. 하지만 만들기, 새로운 놀이, 탐구활동에는 관심을 보이고 툴툴대면... -
너희 인생엔 맛있는 초콜릿이 많이 남아 있단다
지역아동센터는 덧없으면서도 가치 있는, 슬프면서도 기쁨으로 충만한, 그런 양면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누군가가 인생의 어느 시절을 지켜 준다는 것, 그것만큼 좋은 선물이 있을까?지역아동센터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삶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강인한 힘의 원동력이 되는, 회복탄력성의 핵심이 되는 인간관계의 멘토 역할을 한다. 좋은 멘토가 되고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은 위대한 축복이다.‘뜰안, 메리 크리스마스! 내 안에 너 있다.’지난해 뜰안 페스티벌 카드 쓰기 부문에서 1등을 한 작품이다. 이미 산타의 존재를 알아버린 아이들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트리를 함께 만들고 꾸미고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마냥 행복하다.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등 우리가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의 놀이가 나온다. 동심이 사라진 어른들의 게임은 수단과 방... -
내가 지역아동센터를 사랑하게 된 이유들
처음에 제가 입사할 때 ‘지역아동센터는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사랑과 관심이 부족한 아이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이 잘못된 생각임을 깨닫고,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 누구보다 애정이 넘치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장소임을 알게 됐습니다.항상 학교가 끝나고 오면 고생하는 선생님들 드시라며 슬쩍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주는 조그마한 손, 친구와 동생들의 생일을 자신의 생일보다 더 챙기며 기뻐하고 양보하는 모습,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먼저 사과하는 모습 등 저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이유는 정말 흘러넘치도록 많았습니다.입사 후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선생님보다는 아빠처럼 형처럼 친구처럼 생각하고 다가와 주는 모습 또한 정말 고마웠습니다.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던 저 자신에게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사랑과 관심을 베풀 줄 아는 아이들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항상 센터로 다 같이 달려와 빨... -
모든 날, 모든 순간이 행복하기를 응원한다
2020년 6월 ‘나답게 크는 아이 지원사업’의 현장교사로 처음 센터에 인사 갔던 날, 교실 한구석에서 긴장된 모습으로 있던 남자아이를 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매사에 말이 전혀 없었습니다. 항상 어두운 얼굴에 맨 귀퉁이에 앉거나 기운 없이 걸어 다니고, 친구들과 문제가 생기면 크게 화를 냈습니다. 나답게 사업에 참여하는 아동이 아니었기에 제가 개입할 수도 없었습니다.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나답게 사업에 참여하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업이 종료되던 마지막 날, 저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며 “선생님이 우리 서준(가명)이 씩씩한 친구 되라고 매일매일 기도할게”라고 말했습니다. 사업이 종료돼 쉬고 있던 어느 날, 센터장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내년에 새로 시작하는 나답게 사업에 서준이가 참여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참 기뻤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잘할 수 있을지 책임도 느껴졌습니다.이제 4학년이 된 서준이는 여전히 침울한 얼굴로 저를 맞이... -
언니, 그동안 고생했어. 나랑 놀자
2021년 7월에 한시적 돌봄 교사로 입사해 아이들과 적응하면서 잘 지내고 있었다. 코로나19로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날이 많고 줌으로 수업하느라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센터에 오면 항상 밝은 모습으로 생활하는 아이들이 예쁘기만 했다.7월 어느 날 갑자기 센터 아동 어머니께서 전화로 본인과 아이가 코로나19에 확진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전해 주셨다.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 가까이에서 일어나 다들 너무 놀랐지만, 전체 부모님들께 공지하고 코로나19 검사를 받게 하는 등 매뉴얼에 맞춰서 신속하게 대처했다. 다행히 전원 음성이 나왔지만 바로 센터가 폐쇄돼 2주간 아이들이 센터에 오지 못하게 됐다. 제일 큰 걱정이 아이들 점심식사였는데, 시에 문의해 다행히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힘든 줄도 모르고 도시락을 전달해 주었다. 센터와 가까운 아이들은 직접 와서 가져가기도 하고 조금 거리가 먼 친구들은 집 앞에까지 가져... -
나는 나답게 선생님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반쯤은 물에 젖은 듯 가슴이 무거웠다. 나에게 맡겨진 5명의 아이들 가정환경과 성장과정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첫 번째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아동을 대하는 방법을 잘 몰라 고민이 많이 됐다. 관련 책을 찾아 읽고, 심리치료를 전공한 지인의 도움도 받았지만 수업을 진행하기가 쉽지는 않았다.성준이(가명)는 늘 혼자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인해 형들의 타깃이 됐다. 그런 민준이가 센터 내·외부에서 다칠까 염려가 돼 싸운 형들에게 내가 먼저 “미안하다. 민준이가 화나게 하면 선생님한테 말해. 선생님이 민준이랑 이야기해 볼게”라며 다독였다. 민준이에게는 녹음기를 튼 것처럼 옳고 그름에 대해 쉼 없이 말해 주었다.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두 번째는 느린 학습자가 학습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이 있음을 아는 것이었다. 아동이 학습원리를 파악하고, 개념을 분석하며, 다양한 학습재료를 제시하는 수업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다름을 이해하고 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