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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인터뷰]두드리니 드디어 열렸다…우승 한 푼 현대건설 양효진 “마음을 비우고 시작한 시즌, 오히려 힘을 빼니 우승이 찾아오네요”

3번의 실패에 찾아온 허탈은 ‘비움’으로 승화

챔프전 “긴장 속 연경언니와 눈도 안 마주쳐”

“이제 남편과 마음껏 아이스크림 먹을 것”

양효진 선수가 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양효진 선수가 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은 지난 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승리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현대건설 선수들은 다함께 세리머니를 펼쳤다. 우승팀의 권리라고 할 수 있는 그날 밤의 기쁨을 온 몸으로 누렸다.

앞서 세 차례나 챔프전 우승을 놓쳤던 현대건설이었기에 우승의 여운은 더 진했다. 2019~2020, 2021~2022시즌에는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코로나19 여파로 포스트시즌 없이 시즌이 종료됐다. 2022~20223시즌에는 시즌 중 선두를 달리면서 기대감을 키웠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우승을 놓친 세 차례 시즌 중 두 차례는 천재지변 때문이어서 누구를 탓할 수 없었다. 현대건설의 주축 선수 양효진(35) 역시 몹시 아쉬웠다. 챔프전을 위해서 연습을 하고 있다가 코로나19로 취소가 되었다는 소식에 크게 허탈했고, 다 잡은 듯 했던 우승을 플레이오프에서 놓쳤을 때는 상심이 컸다.

양효진 선수가 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양효진 선수가 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잡힐 듯 멀어진 챔프전 우승이 반복되자 점차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게 됐다. 이번 시즌은 그렇게 비워진 마음으로 시작이 됐다.

“정말 많이 비웠어요. 플레이오프에만 올라가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고대하던게, 힘을 빼고 난 뒤에 찾아온 느낌이라 신기하네요.”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23~2024 V리그 시상식이 끝난 뒤 만난 양효진은 이렇게 말했다.

우승의 기쁨을 누린 뒤 일주일, 양효진은 문득문득 우승의 순간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는 “실감이 잘 안 났었다. 우리가 세 번 정도 시도했다가 무산이 된 채로 끝났는데 잘 마무리해서 뿌듯한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양효진은 이번 챔프전 3경기에서 모든걸 쏟아부었다. 53득점을 쏟아부으며 트로피를 스스로 거머쥐었다. 너무나 바란 것이기도 하지만 또 받고 나니 공허한 마음도 적지 않다. 그는 “기쁜 마음이 매일 가지는 않고 문득 문득 찾아온다. 챔프전이 끝난 후 한 3일 동안은 ‘우승했네’라는 생각은 했지만 공허감도 있다. 그래서 또 다시 내년에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이번 시즌 역시 쉽지 않았다. 양효진은 시상식에서 미들 블로커 베스트7에 선정되면서 10년 연속 수상을 했다. 그는 수상 후 “이번 시즌 시작할 때 유난히 힘들었는데 상을 받게 되어서 힘든 순간이 씻겨나가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양효진 선수가 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양효진 선수가 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양효진은 “1라운드까지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정말로 많이 힘들었다. 체력적으로 시즌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3라운드가 돼서야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양효진이 살아나기 시작하자 팀도 살아났다. 현대건설은 시즌 중반부터 선두권 반열에 올랐지만 6라운드부터 목 디스크 증상이 양효진의 플레이를 어렵게 만들었다. 상대는 물론 통증과 싸우며 다른 경기보다 배로 힘든 경기가 이어졌다.

하필 시즌 막판까지 선두 다툼을 벌인 팀은 ‘절친’ 김연경이 뛰는 흥국생명이었다. 대표팀에서는 함께 뛰는 둘도 없는 사이지만 우승 앞에서는 적이었다.

양효진은 “챔프전에서 꼭 맞붙고 싶었는데, 정작 맞대결이 성사되자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시즌 경기보다 긴장도가 더 높다보니까 경기 중에 서로 아예 안 쳐다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양효진과 김연경은 매 경기 치열한 승부속에서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김연경도 챔프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한을 풀겠다는 현대건설의 집중력이 더 좋았다. 현대건설은 흥국생명에게 한 경기도 내주지 않고 압도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기에 결과에대한 고마움이 컸다. 양효진은 “내가 아직도 팀에 도움을 주면서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래도 열심히 달려온 덕분에 우승이라는 상이 얻어진 것 같다”고 했다.

양효진은 이제 당분간은 달콤한 휴식을 지낼 생각이다. 챔프전을 마치고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으로 ‘아이스크림’을 꼽았던 그는 “챔프전을 하기 전에 휴식일이 있었는데 그때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났다. 챔프전이 시작되면 어딜 가지 못하니까 더 먹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점프가 중요한 미들 블로커다. 자기 관리를 잘 하기로 유명한 양효진이기에 비로소 이제는 ‘식욕’이 생겼다. 챔프전 매 경기 찾아와 응원을 한 남편과도 모처럼 좋은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양효진은 “매 경기 응원을 하러 와줬다. 나는 원래 혼자 지내는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신기하게 남편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좋더라”고 말했다.

이번 시즌을 통해 ‘비움의 미학’을 배운 양효진은 다음 시즌에도 특별한 목표가 없다. 그는 “목표를 안 정한지는 오래됐다”며 “다음 시즌에도 내가 늘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준비를 할 것이다. 우승은 이번에도 목표를 하고 시작하지 않았으니 내가 열심히 하다보면 결과는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라며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