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도 그런 한량이 없다.

어느 날 전화하면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다고 하고, 어느 날은 한라산을 오르는중이란다. 오전에 등산하고, 오후에 축구한 후, 밤엔 낚시를 가는 날도 종종 있으니 말 다했다.

“장가 가고 나서야 처음으로 방 2칸짜리 집에서 살아봤을 정도로 집안이 어려웠어요. 그래서인지 재미있게 노는 데 한이 맺혔나봐요.”

일은 도대체 언제 하나 싶은데도 남들 못하는 일을 척척 해낸다. 물론 일 벌이는 데도 선수다. 노는 것처럼 일하고, 일하는 것처럼 논다는 말은 그를 두고 나온 말인 듯 싶다.

스프링컴즈 배성곤 대표(48)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배 대표가 얼마 전 ‘일’을 냈다.

미국 재소자 마켓에 게임을 팔았다. 복역 중인 죄수들에게 스마트폰 게임을 허락한다니 흥미롭다. 당연히 스마트폰 게임이 소일거리다. 물론 외부와 연결은 안 된다. 미국은 돈과 사람이 많은 만큼 죄수들도 넘쳐난다. 당연히 돈 되는 사업이다.

그런데 계약 과정이 그답다.

“사실 저도 그런 마켓이 있는 줄 몰랐죠. 축구 동호회를 나가는데 알고보니 거기 회장이 재소자 마켓 판권을 가진 미국회사의 한국지사장님이었어요. 쉬는 시간에 게임 출시했다고 보여드렸더니 재소자 마켓에 한번 공급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재소자 마켓은 미국에서도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다. 재소자들은 투명한 핸드폰이나 태블릿형 디바이스를 구매할 수 있는데, 키오스크(거치형 설비)에서 결제하고 게임을 다운받는 방식이다. 재미있는 것은 교도소 내 게임 인기 순위도 있다는 사실이다. 또 게임 하나당 가격이 8~20달러로 다양한데 너무 싼 게임은 오히려 재소자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한다.

게임을 파는 입장에서 이 마켓이 좋은 것은 별점 관리나 사후관리(CS)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기존 게임에서 광고만 걷어내고 건네 주면 되니 꽤 짭짤한 수익원인 셈이다.

그는 지난해 6월 멀쩡히 다니던 글로벌 게임사를 나와 모바일게임을 전문으로 서비스하는 ‘스프링컴즈’를 창업했다. 달랑 3명으로 시작한 직원은 현재도 6명뿐이다. 온라인게임사 창업, 상장사 부사장 등을 거치며 모바일게임 <확산성 밀리언 아서>로 빅히트를 치고, 온라인게임 <파이널판타지14>를 성공적으로 서비스한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맨 바닥’을 기겠다고 나온 것이다.

국내 게임시장의 성장이 둔화되고, 점점 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지는 상황을 거스르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역할수행게임(RPG)가 주류인 시장에서 그가 택한 장르는 캐주얼이다. 개발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를 만난 사람들이 빼놓지 않는 질문. 6명으로 어떻게 글로벌 퍼블리싱을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심플하다. “작은 규모로 빠르고 기민하게 움직여 살아남는다.”

그의 원칙은 단순하다.

게임 개발에 4개월 이상을 넘지 않는다. 웬만한 RPG 개발에 10억원이 들지만 스프링컴즈는 게임 10개를 만들 수 있다. 하루 매출 10만원만 나오면, 한 달이면 300만원, 10개를 만들면 계속해 도전 기회가 생긴다는 정말 단순한 생각으로 창업했다.

그런데 첫 게임부터 대박이 났다. 퍼블리싱한 <쥬얼스템플퀘스트>가 두 달도 안 돼 글로벌 15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복덩이가 됐다. 점유율은 남미(브라질)와 유럽이 35%로 1위, 미국 25%, 한국이 15%다. 엄청난 마케팅비를 뿌린다 해도 이런 효과를 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현재는 <쥬얼스템플>이 약 300만 다운로드, 두번째 타이틀인 <벽돌깨기:스페이스킹>이 25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고 순항중이다.

이렇게 해서 번 돈은 소규모 개발사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런 식으로 어려운 여건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후배들과 글로벌 시장으로 가겠다는 게 업계에서 ‘형님’ ‘멘토’로 불리는 그의 목표다.

“게임업계 발전과 친구·후배의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기회가 있다면 더 많은 ‘선한 영향’을 미치고 싶어요.”

얼마 전 일화는 그가 왜 ‘업계의 형님’으로 불리는지 알게 해준다.

지난달 그는 국내 유수 기업의 공익재단 관계자와 자리를 함께 했다. 재단이 준비 중인 교육용 게임과 관련해 설명을 듣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 한푼이 아쉬운 그의 입장에서는 간과 쓸개를 빼주는 것은 기본이고, 온갖 사탕발림으로 재단 관계자의 마음에 점 하나라도 찍어야하는 순간이었다.

“재미도 있고, 교육 효과도 높은 게임을 만들었으면 하는데….” “재미도 있고 교육 효과도 높은 게임은 이제껏 본적이 없고, 만들어 드릴 자신도 없습니다. 차라리 그 자금으로 기존 게임들을 활용해 교육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찾고, 다른 좋은데 더 쓰시는게….”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재단 관계자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솔직함이 마음에 든다”며 오히려 도와달라고 손을 건넸다. 요즘 그는 후배들을 연결해주기 위해 재단 관계자와 골머리를 싸매는 중이다.

“게임산업에 관한 경험과 노하우를 중소 개발사들과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물론 그러려면 지금 하는 스프링컴즈가 잘돼야죠. 그러고 나면 돈을 많이 벌어서 지인들을 초청해 알래스카 여행을 가겠다는 제 인생의 목표도 가까워지겠죠.”

스프링컴즈는 후배인 신영철 레인폴 대표와 함께 만든 회사다. 퍼블리싱 사업 경험이 없는 신 대표가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해 뜻을 맞췄다.

“회사명을 잘 보시면 운율이 있어요. 레인폴(비가 내리고)과 스프링컴즈(봄이 오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까? 게임업계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모든 이에게 봄이 왔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았어요.”

■배성곤 대표는?

액토즈소프트를 코스닥에 상장시킨 주역으로 세계적인 인기 온라인게임 <파이널판타지14>의 한국 사업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액토즈소프트(아이덴티티모바일) 총괄 부사장, KB온라인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게임개발자협회 및 한국모바일게임협회 고문,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노동부)를 맡고 있다.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을 수상하고, 광운대 정보콘텐츠대학원 게임학 석사를 땄다.

2016년 6월 글로벌 게임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스프링컴즈를 창업했다. 스프링컴즈 사업 외에 전국을 다니며 중소개발사가 시장에서 살아남는법을 가르치는게 요즘 그의 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