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만든 말 ‘개판 5분전’

우리말 실력을 쑥쑥 키우는 방법 중 하나는 어원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대개의 말은 나름의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생겨났습니다. 그런 이유들을 알면 낱말들을 정확하게 쓸 수 있게 되고, 우리말을 알아가는 과정의 재미가 쏠쏠해집니다.

어원을 잘 몰라 의미를 엉뚱하게 이해하는 표현 중 하나가 ‘개판 오분전’입니다. 많은 분들이 ‘개판 오분전’의 개판을 “개들이 잔뜩 모여 마구 짖어대며 소란을 피우는 상황”으로 여기는데요. ‘개판 오분전’의 개판과 ‘멍멍이’는 조금도 관련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개들이 잔뜩 모여 있으면 시끄럽고 소란스럽겠지만, 그 5분 전에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지 않겠어요? 절대 혼란스러울 리가 없죠.

이 표현의 뿌리는 우리의 아픈 상처인 6·25전쟁에 닿아 있습니다. 당시 각지에서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왔습니다. 멀쩡한 날에도 밥을 굶는 이가 많던 시절인데, 전쟁통이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굶주린 이들을 위해 무료배식을 하곤 했는데요. 시계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던 때라 배식하는 사람들이 밥을 나눠 주기 전에 “개판 오분전, 개판 오분전…” 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개판 오분전(開飯五分前), 즉 솥단지 위의 나무판을 열고 밥을 나눠 주기 5분 전이라는 소리지요. 그 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수라장을 이뤘다고 하네요.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가시죠?

‘개판오분전’의 준 꼴인 ‘개판’이라는 말도 ‘멍멍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개판’은 “상태·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우리말에서는 개살구·개떡·개망나니 등처럼 “흡사하지만 질이 떨어지는” “헛된” “정도가 심한” 등을 의미할 때 ‘개’가 붙곤 합니다. 개나리꽃도 나리꽃 중에서 가장 못생겨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이죠. 또 ‘개꿈’이라는 말 역시 ‘멍멍이’가 등장하는 꿈이 아니라 헛되거나 쓸데없는 꿈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상스럽거나 나쁜 것을 뜻하는 말 중에 ‘개’가 들어가는 단어가 많다 보니, ‘개거품’을 바른말로 아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 몹시 괴롭거나 흥분했을 때 입에서 나오는 거품 같은 침”을 일컫는 말은 ‘게거품’이 바른말입니다.

게는 위험에 처하거나 주변 환경이 바뀌면 입에서 뽀글뽀글 거품을 뿜지요. 사람도 흥분하면 입가에 침이 잔뜩 고이고요. 그래서 생겨난 말이 ‘게거품(을) 물다’입니다.

여기서 문득 ‘개가 입가에 잔뜩 침을 물고 으르렁거릴 때는 개거품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개거품’은 쓸 수 없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사람이나 동물이 몹시 괴롭거나 흥분했을 때 입에서 나오는 거품 같은 침”을 ‘게거품’으로 명시하고 있기도 하지만, 만약 ‘개거품’을 인정하면 ‘사자거품’ ‘말거품’ ‘소거품’이라는 말도 가능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입에 문 것은 ‘사람거품’이 되겠지요.

물론 “개가 입에 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렸다”로는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개가 입에 개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렸다”로 써서는 안 됩니다. 이때도 개가 문 것은 ‘게거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