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자매, 빌라 공작 부인

오늘의 그림은 루브르에서 많은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작품입니다. 그림 앞에서 멈칫하고 두리번거리게 되죠. 등장 인물의 포즈나 세부가 그만큼 낯섭니다.

그림 앞에 선 사람들 마다 ‘응?’ 하고 궁금하게 되는 이 그림은 프랑스 ‘퐁텐블로파’가 1594년경에 그렸다는 것만 짐작되고 작가가 누군지 잘 모르는 상태입니다. 화가의 자리에 들어선 퐁텐블로 화파라는 것은 한국으로 따지면 ‘수원성파’ 정도라고 할 수 있을 느낌의 단어입니다. 퐁텐블로는 숲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그 숲에 자리한 성의 이름입니다.

대대로 프랑스 왕가에서 사냥을 하러 가는 곳이었던 별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죠. 아무래도 왕족들과 함께 궁정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기회도 많았습니다. 그곳에 아틀리에를 대규모로 차려 놓고, 발달한 예술 수준을 가진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에 유학보냈던 학생들이 돌아오면 새로운 그림과 예술품을 제작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활동했던 이 유학파 출신 화가 그룹을 퐁텐블로파라고 부릅니다. 굳이 따지면 2기에 해당하는 퐁텐블로 화파가 그렸다고 구분을 해놓아서 이렇게 설명이 길어졌습니다.

이 그림은 우선 두 명의 여성이 목욕통 속에 들어가 상반신 나체를 보여줄 뿐 아니라 갈색 머리의 여자가 금발 머리 여자 가슴의 젖꼭지 부분을 살짝 잡고 있는 행동 때문에 주목을 끄는데, ‘누구’를 ‘왜’ 그렸는지 이유가 남아 있지 않고 갑자기 개방된 왕실 보물창고에서 나와 루브르가 처음으로 박물관으로 변신한 후 공개되니 많은 사람들을 궁금하게 했었다고 하죠.

당연히 이 장면은 대단히 에로틱합니다. 뭔가 상징적인 행동임은 분명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왕실의 여인들이 이런 포즈로 이렇게나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수만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그림의 젊은 금발 여자는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의 공인된 정부였던 가브리엘 데스트레이고, 갈색 머리는 그녀의 동생이자 공작부인이었던 빌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려진 시기는 앙리 4세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을 때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중앙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하녀를 잘 살펴보자. 이 사람이 없었다면, 이 그림은 두꺼운 붉은 천과 앞으로 너무 나와 있는 두 여성 때문에 자칫 이탈리아식 연극(그 시기 프랑스에서 유행)의 한 장면이라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 뒤에서 바느질하는 또 하녀의 존재 때문에 조금은 사실적인 현실감이 있다.”

“가브리엘은 자기의 엄지와 검지로 반지를 하나 보여주고 있으며, 동생은 언니의 젖꼭지를 두 손가락으로 잡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앙리 4세의 정부였던 가브리엘이 아이를 임신했고, 곧 그 덕분에 결혼하게 된다는 점을 상징할 것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앙리 4세의 세번째 아이를 낳는 도중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다.”

스페인 접경의 나바론 공국의 지방 귀족이던 앙리 4세가 중앙무대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마르그리트 공주와 정략결혼 덕분이었지요. 공주와의 결혼 덕에 앙리 4세는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던 부르봉 왕가의 첫 번째 왕이 됩니다. 영화 <여왕 마고>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이 시기의 역사는 신교와 구교 간의 대립이 잔인한 폭력으로 나타난 바르톨로뮤 대학살과 함께 프랑스 근대사에서 극적인 사건들 중에 하나인 낭트 칙령 발표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그리트(마고) 공주와 앙리 4세의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못하고, 앙리 4세의 정책상 혹은 성격상 수많은 여성들과의 일들이 터지게 됩니다.

그림 속의 가브리엘은 그중에서도 가장 왕의 사랑을 받았던 여성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에 아들만 둘을 낳은 가브리엘이 간절히 바라는 정식 결혼은 먼저 이혼을 해야 가능한 것이었는데, 앙리 4세는 쉽게 이혼을 실행하지 못합니다.

첫 아이를 낳기 전에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이 그려지게 된 것도 그 때문에 가브리엘이 결혼을 조르기 위해 왕에게 선물한 게 아닌가 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몇 달 뒤 가브리엘은 나중에 방돔의 공작이 되는 첫 아들 세자르를 낳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남동생 알렉산드르도 낳았죠.

앙리 4세가 이전에 영국의 헨리 8세가 그러했듯이 자식 못 낳고 잠자리를 거부한다는 핑계로 왕비와의 결혼을 무효화하고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재혼할 방법을 찾았다고 이야기한 얼마 뒤 가브리엘은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앙리 4세는 가브리엘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슬픈 나머지, 완전히 검은 옷을 입고 애도하며 고통스러워했는데, 이렇게 검은 옷을 입고 있던 것은 그것도 왕의 신분으로 프랑스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어서 프랑스 국민들 전체에 오랫동안 화제가 됐다고 합니다.

두 여인의 행동이 잠깐 멈칫 하게 했으나 이 그림은 기법이 뛰어난 것도, 확실히 압도적인 것도 아닙니다. 구석구석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엉성해 보이고 명작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더구나 그려진 연도는 1594년. 다빈치가 활동했던 1400년대 말 혹은 티치아노의 전성기였던 1500년대 초반, 이 그림보다 100년 전에 이탈리아 회화는 그 성과가 말 그대로 눈부셨습니다. 프랑스가 기술적으로나 예술의 깊이에서나 많이 뒤떨어져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오히려 이 그림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손가락과 손을 그리는 부분이 어려웠다는 게 빈말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하고 있죠.

오늘의 그림은 프랑스 역사의 가장 이야기가 많았던 시기를 담은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의 여동생의 초상화였습니다.

미술사학자 안현배는 누구?

서양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예술사로 전공을 돌린 안현배씨는 파리 1대학에서 예술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예술품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태어나게 만든 이야기와 그들을 만든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라와 언어의 다양성과 역사의 복잡함 때문에 외면해 오던 그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