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2일 직권으로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에게 수사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이 ‘위법하다’고 주장한 박근혜 대통령측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에 열린 첫 준비절차기일을 40분간 진행하고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날 탄핵사유를 5가지로 좁히고,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또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헌재가 수사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박 대통령 대리인단 측은 지난 16일 ‘재판·수사가 진행중인 사건에 기록에 대해서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는 헌재법 32조를 어기고 수사기록을 요청했다”며 이의신청을 낸 바 있다. 하지만 헌재는 이 같은 시비를 피하기 위해 헌재법이 아닌 형사소송법 272조를 근거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탄핵심판은 형사소송 절차를 준용한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답변서를 국회가 무단으로 공개한 것을 제재해달라’는 박근혜 대통령측 소송지휘권 행사 요청에 대해 “탄핵심판에 관한 소송서류와 그 내용을 법정에 공개되기 전에 언론에 공개하면 안된다는 점을 유념해 달라”고 밝혔다.

지난 16일 박 대통령측 대리인단은 헌재에 소추사유에 대해 모두 부인하는 내용을 담은 답변서를 제출했고, 헌재로부터 이를 받아본 국회 소추인단은 지난 18일 이를 공개했다. 이에 박 대통령측은 지난 19일 “국회 탄핵 소추위원단이 대통령의 답변서를 공개한 것은 형사소송법 47조 위반”이라며 “헌법재판소가 소송지휘권을 행사해 이를 제지해 달라”는 요청서를 제출했다. 형사소송법 47조는 ‘소송에 관한 서류는 공판의 개정 전에는 공익상 필요 기타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공개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5가지로 탄핵사유 쟁점도 좁혔다. 헌재 재판부는 “소추 사유를 9가지 사유를 5가지로 정리했다”며 “비선조직에 따른 국민 주권 위배, 대통령의 권한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뇌물수수가 5가지”라고 밝혔다. 양측 대리인단은 재판부가 이 같이 정리한 쟁점에 대해 모두 이의가 없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소추위원 측에서 증거조사 의견서와 심판절차를 직권으로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그러나 헌법재판소법상 탄핵심판절차는 형사소송법에 준용해 운용하도록 또 있으며, 소추의결서에 기재하지 않은 사유가 아닌 새로운 사실을 임의로 추가할 수 없다는 선례가 있다”고 말했다.

직권주의는 법원이 주도적으로 증거를 조사하고 판단하는 주의를 말한다. 당사자 변론주의는 이와 반대로 재판에 참여하는 피고 등 당사자들이 증거를 모으고 서로 변론을 하고 재판부가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주의다.

재판부는 “탄핵소추로 (대통령)권한대행이 국정을 운영하면서 국정의 상당부분 공백 우려가 있어 직권 증거조사와 신속한 해결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탄핵심판절차도 기본적으로소송법의 대원칙에 따라 당사자의 변론주의를 기본으로 해야하지 않느냐는 것이 우리 재판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헌법재판 특성상 상당 부분 직권주의가 강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국회 소추위원단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 ‘비선실세’ 최순실씨 등에 대한 사건 기록을 보내도록 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요청했다. 소추위원단은 재판부에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차은택, 송성각 등의 사건기록에 대한 인증등본(사본) 송부 촉탁을 신청한다”고 밝혔다.

헌재가 지난 15일 직권으로 검찰과 특검에게 이들의 수사기록 제출을 요구한 점을 고려해, 송부 촉탁 대상자를 법원으로 신청한 것이다. 헌재 재판부는 이 같은 소추위원 신청을 받아들여, 서울중앙지법에 자료 기록 송부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회 소추위원단은 인증등본 송부촉탁으로 수사기록 입수가 불가능할 경우, 서울중앙지법·서울중앙지방검찰청·특별검사 사무실에서 서증조사를 예비적으로 신청했다. 헌재는 이 역시 승인했다.

이날 준비절차기일에서 재판부는 양측의 동의를 받아 최순실, 정호성, 안종범을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결정했다. 소추위원단은 탄핵심판의 증인으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28명을 신청했다. 그러나 대통령측 대리인단은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소추위원단의 증인 신청을 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국회 소추위원단이 제출한 서증 49개를 증거로 채택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서증 3개도 증거로 채택했다.

이날 소추위원단이 낸 서증에는 최순실씨(60),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7),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7)에 대한 공소장과 차은택씨(49) 등 ‘포레카 강탈사건’ 등에 연루된 5명의 공소장이 포함됐다. 공소장뿐 아니라 공소사실에 대해 검찰이 요약한 문건도 포함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을 제기한 신문기사들, 국회 국정조사특위의 조사록과 회의록도 증거에 포함됐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이날 증거로 제출한 서증은 총 3건이다. 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형사 수사사건에 대한 여러가지 기록들에 대해 인증등본 송부촉탁을 신청하기로 했다.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단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진성 헌재 재판관은 박 대통령 대리인단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박 대통령)이 청와대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지, 또 피청구인이 그동안에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보았는지를 시각 별로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이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가 2년 이상 경과가 됐지만 그날은 워낙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날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떠올리면 각자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 기억을 할 수 있을 정도”라며 “그에 대한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밝혔다.

이 재판관은 이어 “언론 기사나 청문회 내용에 의하면 여러 보고를 받으신 것으로 돼있는데 어떤 보고를 받았으며 보고를 받은 시각이나 그에 대한 대응 지시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남김 없이 밝혀달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두번째 준비절차기일을 오는 27일에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