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남자배우 중 제가 가장 유연할 겁니다.”

배우 이재준(26)은 배우가 되는 또 다른 길을 개척한 선구자로 기억될 것 같다. 그는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무용과를 전공했다. 그리고 모델로 연예계 일을 시작한 후 연기까지 지평을 넓혔다. 무용과 출신 여배우는 <해무> <극적인 하룻밤> 등의 영화에 출연한 한예리 등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남자 배우 중에서는 찾기 쉽지 않은 경력이었다. 그는 최근 끝난 KBS1 일일극 <우리집 꿀단지>에서는 주인공 강마루 역을 맡아 지상파 주연 데뷔도 치러냈다.

극중에서는 가진 것 없어도 유쾌한 성격의 인물을 연기했지만 실제 이재준의 성격은 진중했다. 어느 정도 성과에 자신이 먼저 뿌듯해지는 다른 신예들과 달리 이재준은 자신이 잘못한 점부터 차례로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2014년 영화 <야간비행>의 주연으로 베를린영화제에도 다녀왔지만 그런 건 싹 잊어버린 후였다.

“밝은 역할이었는데 제 스스로가 말도 행동 느리다보니 대사를 주고받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오히려 인물을 생각해서 더 밝게 연기하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인물의 톤이 높아져버렸죠. 마루는 상황을 말로 표현하는 아이였고, 말도 빠르게 했어야 했는데 제 스스로 부족하다는 점을 많이 느꼈어요.”

<우리집 꿀단지>는 포기할 것이 너무 많다고 이른바 ‘N포 세대’로 불리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또래 배우인 시크릿의 송지은과 호흡을 맞추면서 6개월 이상의 촬영과 방송 기간을 버텨냈다. 또래 친구들처럼 취직의 걱정이나 학점, 각종 자격증에 시달리진 않았지만 지금의 청춘들에게 드리워진 검은 구름을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제가 있었던 예체능계에서는 인문계에 비해 훨씬 더 포기의 단어를 많이 들을 수 있었어요. 친구들에게도 물으니까 포기하는 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청춘이 밝아져야 한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 모든 시련을 이기면서 긍정을 감싸 안는 인물이니까 저 스스로도 역할의 영향을 받았죠.”

영화 몇 편에 이어 tvN <연애조작단:시라노>와 <더러버> 등 주로 CJ E&M 계열의 드라마에 자주 나왔던 그는 원래 연극영화학도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접한 라트비아 출신의 무용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작품 <백야>를 본 후 무용에 흠뻑 빠졌다. 여러 운동을 허락했던 부모님 덕분에 태권도도 4단까지 딸 수 있었던 그는 입시준비를 시작하던 즈음 무용으로 진로를 급선회했다.

하지만 대학진학을 앞둔 시점에서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부상으로 쉬는 사이 시작한 모델이 그의 인생행로를 다시 바꿨다. 모델을 시작하고 여러 무대와 촬영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소속사 매니지먼트 숲을 만났다. 이 회사에는 베테랑 여배우 전도연을 비롯해 공효진, 공유, 류승범이 소속돼 있다.

“같은 소속사 선배님들이지만 정말 동경하는 분들이에요. 전도연 선배님 작품은 아직도 안 보고 아끼고 있고요, 이병헌 선배님의 연기도 좋아해요. 공유 선배님은 새해 인사를 드린 적이 있고, 뵐 때마다 인사하는데 어설프게 할 바엔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정말 좋은 작품을 하고 인사드리려고 생각 중이에요.”

일단 진로를 잡으면 끈기를 갖고 노력해서 그 길을 헤쳐 나가고 배움이 느리지만 꾸준한 모습이 큰 그릇이 될 수 있겠다는 예상이 들기도 한다. 시종 진중했던 그에게 ‘또래 배우와 차별되는 자신만의 것’을 물었다. 한참 꾹 다물고 있던 그의 입가에서 조금씩 미소가 배어났다. 대답 또한 재미있다.

“아직 정확히 쓰는 방법은 모르는데, 대한민국 20대 남자 배우 중에서는 가장 유연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스트레칭 앞뒤, 양 옆이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