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제안을 받고 망설였던 건 ‘세월호 사건’이란 소재의 무게가 무서웠기 때문이에요. 다가가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고, 혹시나 이 소재가 정치적으로 보여질까봐 걱정도 됐고요. 또 시기적으로 지금 찍는 게 맞는 건가에 대한 고민도 컸죠. 하지만 촬영을 끝난 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고, 제 손에 직접 수놓은 지갑을 쥐어주는데 그 생각을 했다는 것마저 죄스럽더라고요. 출연하지 않았다면 크게 후회했을 거예요.”

배우 전도연이 택한 영화 <생일>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의 얘기다. 국민적 트라우마이며 예민한 사안이지만, 그럼에도 그가 출연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따뜻하게 다가가 손 잡아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선택했지만, 지금은 이 영화에 동참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거창한 사명감이나 의무감, 책임감 때문은 아니에요. 극 중 누군가 다가와 유가족을 안아주듯 그 옆을 따뜻하게 지켜주는 영화고, 이 작품을 본 우리도 그런 이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죠.”

전도연은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생일>이라는 무거운 영화를 택한 이유부터 ‘세월호 사건’에 대한 조심스러운 마음, 국민으로서 부채감 등을 털어놨다.

■“돌아오는 4.16, 아마 이전과는 의미가 다르겠죠”

그날의 사건은 그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고백했다.

“당시 뉴스를 보면서 ‘에이, 구조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게 아직까지도 트라우마예요. 저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 세월호 사건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이후로 ‘잊지 말고 기억하자’고 했지만, 사실은 잊게 됐고 잊혀지기 마련이었잖아요. 또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으니까요.”

이번 영화를 찍어 부채감이 덜했냐는 질문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덜어질 수 있겠어요? 그저 그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일 뿐이죠. 사건에 대한 참여 의식도 생겼고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 영화로 세월호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 크게 바뀌진 않겠지만, 이건 아직 끝나지 않은 얘기고 유가족도 용기와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연기를 할 때에도 평소보다 더 깊은 고민이 그를 괴롭혔다. 실제 유가족에게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인위적이지 않은 감정을 지켜야만 했다고.

“실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혹시나 제가 연기하는 슬픔이 유가족의 감정이 아닌 인간 ‘전도연’의 것일까봐 경계했어요. 어쩌면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도 절 의심했던 것 같아요. 그 슬픔을 흉내내면 절대 안 되니까요. 머릿속에 있는 계산도 다 지우려고 했어요. 조금 부족해도 그저 내가 그 상황 안에서 느끼고 나오는 만큼만 연기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어요.”

■“만나기 두려웠던 유가족, 제가 먼저 다가갔어야 했는데…”

그가 가장 두려웠던 건 유가족들만 초청한 시사회였다고 했다. 영화는 완성됐지만, 그 무대에 나서서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고.

“그들은 그 사건 이후에도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는데, 전 그저 연기만 했을 뿐이잖아요.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유가족 시사회에 안 가고 싶다고 홍보팀에 말하기도 했어요. 극장 안에 들어서기조차 힘들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자 유가족 어머니들이 내려와서 제 손을 잡아주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먼저 다가갔어야 했구나 싶었고요.”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상대역 설경구와 의지하며 헤쳐올 수 있었다고도 했다.

“어릴 적 함께 작업했던 덕분일까요. 촬영 전 설경구가 캐스팅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서로 의지하면서 촬영하면 되겠구나 싶었거든요. 쉽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대한 신뢰가 있어서 저도 편하게 감정을 놓고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느냐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남자로서 매력도 더 커진 것 같고요. ‘지천명 아이돌’이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던진 화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에 대해 물었다. 매우 어려운 질문이라며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요. ‘좋은 엄마’나 ‘좋은 어른’이 어떤 건지도 짐작이 안 되네요. 아이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부모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론 많이 힘들잖아요? 저 역시 죽을 때까지 좋은 엄마, 좋은 어른으로서 완성되진 못하겠지만 엄청 노력하면서 살아야할 것 같아요.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