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이자 영화감독 사이토 타쿠미가 자신이 연출한 장편영화 <13년의 공백> 개봉에 맞춰 내한했다.

사이토 타쿠미는 2014년작 후지TV 드라마 <메꽃 -평일오후 3시의 연인들->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다. 그러나 인기나 유명세를 등에 업고 감독 데뷔했다고 보는 시선이라면 좀 성급하다. 소문난 영화광이자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2년에 단편 영화 <サクライロ(연분홍색)>으로 감독 데뷔를 마쳤다. 2014년에는 <半分ノ世界(절반의 세계)>이 쇼트쇼트 필름 페스티벌&아시아 영화제 특별상영작으로 선정됐다. 이번에 개봉하는 <13년의 공백>으로 그는 2017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판타랜드 대상과 제 20회 상하이 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신인상부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새로운 도전 이유, 고정되는 것 가장 경계

사이토 타쿠미는 한국과 꽤 인연이 깊다. 유지태·김하늘 주연의 영화 <동감>의 2001년 일본 리메이크작 <時の香り~リメンバ-ミ-(시간의 향기-리멤버 미)>가 그의 배우 데뷔작이다. 2008년도에는 뮤지컬 <테니스의 왕자> 내한 공연으로 한국을 찾았고 2009년에는 영화 <카페 서울> 촬영을 위해 방문했다.

가장 처음 한국에 왔던 것은 중학교 때 어머니와 함께 온 미식여행이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를 따라 중학교 때 ‘한국 요리를 먹으러 가는 여행’이라는 투어에 참여한 적도 있어요. 이번에 와서도 순두부, 곰탕, 냉면을 먹었어요. 매운 음식도 정말 좋아합니다.”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영화애호가인 그는 한국영화를 통해서도 큰 자극을 받는다고 말한다. <살인의 추억> <마더> <신세계>를 인생작으로 꼽는다.

“특히 <살인의 추억> 마지막 신은 정말 잊을 수 없어요. 송강호 배우가 카메라를 직접 보는 시선처리에 충격받았죠. 마치 ‘잡히지 않은 범인은 너의 옆에 앉아있을지 모른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와닿아서 마음을 빼앗겨버렸어요.”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지만 연출 분야뿐 아니라 도전과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사진과 영화는 공통점이 많거든요. 사진작가이기도 하고 복면을 쓰고 코미디언에 도전하기도 했어요. 기간 한정이지만 오는 10월에는 개인 유튜브를 개설해 좀더 다양한 도전을 해볼 생각이에요.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고정되고 좁아지는 것이 싫어서 여러 분야에 도전하는 ‘힘든 여정’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그의 캐릭터다. 배우로만 혹은 감독으로만 그를 한정했다면 그의 뒷면에 새겨진 다채로운 색을 미처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13년의 공백> ‘사이토 타쿠미’다운 영화

새로운 시각, 도전정신은 그의 영화에 그대로 녹아있다. <13년의 공백>은 여러가지로 틀을 깬 영화다.

<13년의 공백>은 아버지가 집을 나간 13년의 공백 후, 부자는 재회한다. 그 틈을 메우지 못한 채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는 과정을 보여주며 가족의 의미를 전한다.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 70분 동안 고통, 슬픔, 웃음 그리고 감동이 빠르게 교차한다. 전환의 전환, 관객이 감정의 여운을 곱씹을 새도 없이 또다른 감정에 빠져든다. 연출자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관객이 인물의 감정선에 따라와 줄 거라는 자신감은 없었어요. 그 부분에서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제 3의 시선이 필요했죠. 오히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지적받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감상을 물어가며 편집 작업을 했습니다.”

<13년의 공백>의 총 촬영 기간은 단 6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편이고 상업 영화를 6일만에 크랭크업이라니. 굉장한 생산성이다.

“준비기간 1년 편집이 5개월 걸렸지만 촬영 기간은 6일이었어요. 배우들과 사전 리허설을 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신을 원테이크로 찍었습니다. 때로는 일부러 배우들이 NG가 나도록 설정해서 찍은 부분도 있었어요. 이번 영화의 특성 때문인데요. 영화 속 가장 큰 배경인 장례식이라는 환경이 ‘웃으면 안되는 공간’이라는 룰이 있잖아요? 그 룰을 잘 이용하면 독특하고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짧은 촬영했지만 그림은 충분했어요. 메이킹 필름이 더 재밌습니다.”

웃음과 감동을 함께 주는 장례식 장면 속 배우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작년 3월에 작고한 대배우 오리모토 준키치부터 코미디언, 혹은 한 번도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비(非)배우도 출연한다.

“오리모토는 제가 매우 존경하는 배우세요. 당시 기력이 없으셔서 촬영 당일까지 현장에 올 수 있을지 없을지 예상할 수 없었고요. 촬영 전에 ‘촬영하다 피곤하면 무리하지 않도 된아다’고 이야기했더니 촬영 중간에 힘들다고 실제로 뒤로 이동하기도 했는데 그런 부분도 자연스럽게 살려 장면을 만들었어요.”

누구보다 배우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이토 타쿠미 감독은 그들의 날개를 쉽게 펼치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배우이자 감독이라는 장점은 배우와 같은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함께 자아낼 수 있는 장면이 있거든요. 또 여러 감독님들의 현장을 경험한 것도 저의 장점입니다. 현장은 말 그대로 타협의 장이거든요. 감독이 자의식이 강하다는 이미지도 있지만 사카모토 준지, 에릭 쿠, 미이케 다카시 감독 등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세요. 저도 그들의 현장에 매력을 느껴 그런 감독이 되고 싶어요. ‘존재감 제로’ 감독이라도 좋아요.”

영화 <13년의 공백> 7월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