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가 한국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 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꼽으라면 ‘하멜 표류기’의 하멜과 제방이 무너지는 걸 자신의 손으로 막아 낸 무명(無名) 소년일 것이다(혹자는 ‘플랜더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를 꼽지만 플랜더스는 벨기에에 있다). 마을 제방에 구멍이 난 걸 보고는 자신의 손으로 이걸 막아서 지켜낸 소년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들으며 어린 시절 감동했던 우리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이 무명소년에 대한 열광했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이 무명소년이 실제로 존재했냐는 것이다.

“네덜란드에 제방을 손으로 막아 마을을 구해낸 소년을 기리기 위해 동상까지 세웠다. 실제로 이 소년은 존재했었고, 마을을 구한 뒤 안타깝게도 짧은 생을 접어야 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 이 소년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존재한다. 이 동상 덕분인지 이 소년은 실제 했던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과연 이 소년은 실재했던 인물일까? 그리고 이 소년은 실제로 제방 둑을 손으로 막아냈던 것일까? 오늘의 주제는 자신의 손으로 마을을 구했다는 네덜란드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이번에 당신이 연재하겠다는 이야기가….”

“서스펜스 스릴러죠.”

“그건 알겠는데…뭐라고? 마을 둑에 구멍이 났는데 이걸 그 소년이 막는다?”

“한스 브링카요.”

“그래, 한스 브링카라는 소년이 구멍을 막아서….”

“손가락으로요.”

“그게 말이 돼?”

“말이 안 될 건 또 뭐 있구요?”

“재미있을까?”

“재미있죠. 첫째로 힘없고 약한 소년이 마을을 구한다는 설정 자체가 구미가 땡기잖아요? 그리고 교훈적인 부분도 있구요. 당장 부모들이 열광할 거예요.”

“오케이 거기까지…좋아 그럼 원고 가져와 봐.”

1865년 미국의 동화작가인 마리 메이프스드지(Mary Mapes Dodge)는 한 소년이 손가락으로 구멍 난 제방을 막아 마을을 구해내는 동화를 어린이 잡지에 연재하게 된다. 내용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데, 한 소년이 우연히 마을 뚝방 길을 걷다가 제방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자기 엄지손가락으로 그 구멍을 막아 마을을 구해낸다는 내용이었다. 연재 당시의 반응은 나름대로, 그럭저럭, 웬만 큼의 반응이었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풍차의 나라, 제방의 나라, 히딩크의 나라인 네덜란드에 넘어가면서부터였다.

“이게 요즘 미국에서 뜨고 있는 이야기인데, 제방에 관한 동화래?”

“제방? 어쭈…제방의 원조가 어딘데…어디서 감히 미국 따위가….”

“그런데, 이 동화 꽤 감동적이잖아?”

“진짜…우리나라 동화 작가들은 다 뭐한거야? 양키 놈들이 이런 동화를 쓰는데…카우보이 나라에서 제방동화를 쓰는데, 제방 나라에서는 뭘 하는 거냐고!”

제방의 나라에 소개 된 미국 제방 동화는 곧 사람들의 흥미를 끌게 되었고, 이 흥미는 열풍으로, 열풍은 감동으로 이어졌다.

“그래…제방이 있는 나라라면 있을법한 이야기야.”

“그래, 우리나라에 있을 법한 이야기야.”

“이게 동화가 아니고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면서?”

“한스란 애가 진짜 있었다면서?”

“실제로 있었다면, 한스를 위한 동상이라도 만들어 줘야 하는 거 아냐?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버린 아이인데…아이를 위해서도, 후세의 귀감이 되기 위해서도 동상은 건립해야겠어!”

한스 브링카의 이야기는 네덜란드로 건너가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하나의 ‘감동’이 되었고, 이 감동은 실제로 있었던 일, 나중에는 네덜란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로 점점 부풀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리기 위해 한스를 위한 동상을 만들게 된다.

“네덜란드에 가보니까, 실제로 손가락으로 제방을 막은 소년이 있더라고…정말 대단한 소년이야.”

“어…진짜 동상이 있었어? 그거 동화가 아니고 사실이었구나…”

네덜란드에서 ‘실화’로 각색되어진 마리 메이프스드지(Mary Mapes Dodge)의 동화는 ‘동상’이라는 증거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실화’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곧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된다. 이제 터진 제방 둑을 손가락으로 막아낸 소년은 ‘네덜란드 소년’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소년은 전 세계를 돌고 돌아 한국에까지 상륙하게 된다. 이제 전 세계가 다 알게 된 ‘제방 둑을 막은 소년’이지만, 정작 이 소설의 원작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네덜란드만이 기억되어지게 된 상황. 원작자인 미국 동화작가 마리 메이프스드지가 저세상에서 이 상황을 본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