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유태인 학살과 일제 만행 등 전쟁범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독일과 일본이 전쟁에 패했기 때문에 밝혀진 것이다. 만약 히틀러와 히로히토가 전쟁에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들의 조국’(로버트 해리스 지음·랜덤하우스)은 ‘히틀러가 이겼다면’라는 가정하에 쓰인 ‘히스토리 팩션’이다. 무대는 히틀러 정권이 지배하는 1964년 베를린, 나치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지 20년이 지났고 독일 전역이 총통의 75번째 생일과 미국 대통령 조셉 케네디의 국빈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그러나 그 뒷무대에는 나치당의 고위간부가 차례로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총통 생일 7일을 앞두고 수사에 나선 베테랑 경찰 크사비어 마르크는 연쇄살인 속에 숨어 있는 무시무시한 진실을 파헤치게 된다.

허구의 ‘히틀러 월드’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버금가는 경찰국가다. 경찰인 주인공은 개인의 범죄가 아닌 국가적 범죄와 역사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국가가 범죄자이면 그 국가 속에 사는 자신 역시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최악의 상황을 현재의 모습으로 가정하며 역사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국가적 과거사 규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치밀한 고증뿐만 아니라 추리, 스릴러소설로서도 일류급이라는 점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이종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