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향응접대 문제로 정국이 소란스럽다. 그 전후맥락이야 이미 나올 만큼 나온 이야기이니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지만, 혹시나 싶었던 마음이 역시나로 돌아앉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공직자의 기본 덕목인 ‘청렴결백’, 이 네 글자를 지키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보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한마디가 최영(崔瑩) 장군이 말씀하신(정확히 말하면, 최영 장군의 아버지인 최원직崔元直이 최영에게 유언으로 남긴 말이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란 말이다. 아버지의 유언을 들은 16세의 최영은 ‘견금여석(見金如石)’ 네 글자를 띠에 적어 평생 품속에 지니고 다니게 된다. 아버지의 유훈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살겠다는 최영 장군의 의지였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최영 장군의 에피소드이다.

“역쉬, 청렴결백! 청백리의 표상이야!”

“최영 장군도 대단하지만, 최영 장군 아버지도 좀 짱 인 거 같아.”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연출되는데…. 과연 그럴까? 최영 장군의 아버지 최원직은 어째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최영 장군은 공직자로서는 미션 임파서블인 아버지의 유훈을 이후 70년 가까이 지킬 수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이 들었어? 최원직네 아들 있잖아. 걔 이번에 무관으로 출사했다더만”

“최원직네 아들이? 걔가 뭐가 아쉽다고, 무관한대? 문관해도 될 텐데?”

“걔가 보통 체격이야? 힘이 장사잖아.”

“야, 힘이 아무리 장사래두 그렇지. 과거를 보든가, 아님 음서로 빠져도 될 텐데 뭐 하러 사서 고생이래?”

“낸들 아냐.”

최영 장군… 툭 까놓고 말해보자. 그는 정말 잘 나가는 집 자식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그럭저럭 편하게 조정에 출사할 수 있었던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었던 것이다.

“야야, 지금 장난 해? 지금 우리 집안을 뭘루 보고…”

“아니, 그게 아니라… 오고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우정이라고… 장군을 흠모하는 마음에… 그냥 차비 살짝 넣었습니다.”

“이색희가 지금… 됐거든? 나 말 많거든? 그리고, 네가 날 좀 1, 3, 5, 7, 9로 보나 본데… 그걸로 차비가 되는 줄 알아? 이거 왜 이래? 나 철원(鐵原 : 동주東州 최씨라고도 하는데, 고려시절 철원의 지명이 동주였었다) 최씨야! 내가 그렇게 쉬운 놈인지 알아!”

그렇다. 최영은 고려시절 끗발 날리던 철원 최씨의 후손이었다. 당시 철원 최씨가 어느 정도의 명문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마디가 있다.

“우리 집안은 개국공신 집안이거든?”

고려의 개국공신 최준옹(崔俊邕)이 바로 최영의 조상이었다. 어떤 집안인지 감이 오는가? 감이 안 오는가? 그럼 좀 더 설명 들어가겠다. 철원 최씨는 고려 시절 왕실과 혼인 할 수 있는 15대 가문 중 하나로 지정된… 말 그대로 ‘로열패밀리 후보군’ 중 하나였다.

이 정도 가문이었으니, 조정에서 벼슬 한 사람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을 것이다. 이거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드니까, 최영의 할아버지 대부터 더듬어 내려가 보자.

“울 할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충렬왕 전하를 가르쳤던, 최옹(崔雍)이야 최옹!”

최영 장군의 할아버지… 그는 충렬왕의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봐라. 임금의 선생이 아무나 될 수 있는 자리일까? 학식도 학식이지만, 정치적 배경과 인품, 가문의 명망도 받쳐줘야지만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이런 최옹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바로 최원중(崔元中)과 최원직(崔元直)이었다. 최원중은 벼슬이 상서(尙書 : 정3품으로 조선시절 판서, 오늘날의 장관정도로 생각하면 된다)에 올랐었고, 최원직은 사헌규정(司憲糾正 : 오늘날로 치면, 감사원 국장정도?)의 자리에 올랐다.

견적 나오지 않는가? 최영 장군의 집안은 고려시절의 오피니언 리더 집단의 핵심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최영 장군의 아버지인 최원직의 벼슬이다. 그의 마지막 벼슬은 공무원들을 감찰하던 사헌규정이었다. 청렴결백의 대명사였던 사헌규정으로 있었던 최원직이었기에 아들인 최영 장군에게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란 공무원으로서는, 그것도 고위 공무원, 거기에다 한반도 안의 고위 공무원에게는 미션 임파서블보다 더 어려운 주문을 했던 것이다.

자,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꼭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생각해 보라 최영네 집안이 어떤 집안인가? 뿌리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고려 개국공신 집안에 고려 최고의 명문거족! 설날 가래떡 뽑아내듯이 고위공직자를 뽑아낸 집안이 아닌가?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는 소리다. 아니, 어렵지 않은 게 아니라 풍족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기록상으로는 식량을 걱정할 정도라고 나와 있지만, 이걸 글자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나라를 쥐락펴락할 정도의 벼슬에 올랐던 이들이 수두룩 지천인 상황에서 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정치적 수사. 레토릭에 불과한 것이다. 최영 장군은 태어나기를 ‘황금보기를 돌같이 해도 될 정도의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영은 또 다른 히든카드를 얻게 되었으니…. 과연 최영은 아버지의 유훈을 어떻게 지켰을까?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