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개국공신의 집안인 명문 철원 최씨 문중에서 태어난 최영 장군! 그는 태어나길 ‘황금보기를 돌 같이 할 수 있는 집’에서 태어난 것이다. 생각해보라, 한 푼이 아쉬운 보통의 공무원이 들어오는 뇌물을 거절할 수 있겠는지? 그러나 돈 걱정이 없는 집 자식이 공무원이 된다면?

“야, 몇 푼 되지도 않는데 돌아갈 때 네들 차비나 해라.”

“아니, 그래도 저희들 성의를 봐서라도…”

“됐거든? 성의만 받을 게… 그거 없어도 나 잘 먹고 잘 살거든?”

이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욕망이란 게 끝도 없는 것이라 주면 자연스럽게 끌리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 끌리는 강도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최영 장군의 지위와 수입, 그리고 지출일 것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다하지만 들어오는 수입 없이 계속 지출만 한다면, 주변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힘겨울 것이기에 말이다.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 휘하에서 왜구들 때려잡는 걸로 군 생활을 시작한 최영 장군은 이후 공민왕 1년(1352년)에 있었던 조일신의 난을 진압하면서부터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제대로 출세코스를 밟아 올라가기 시작한다.

군인이란 존재가 참 아이러니한데, 나라를 위해서는 세상이 평온해야겠지만, 군인은 나라가 어지러워야 빛을 발하는 존재가 아닌가? 공민왕 시절이 어떤 시절인가? ‘조일신의 난’부터 시작해, ‘김용의 난’, ‘홍건적의 난’ 등등 시간차로 터져 나오는 ‘난리 시리즈’ 때문에 거의 정신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뿐 만인가? 왜구들은 뭐 주워 먹을게 있다고 툭하면, 배타고 넘어와 북쪽 오랑캐들이 담 넘어 오는 것도 모자라 원나라에서 옆구리를 찌르는 것까지…. 여말선초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던 것이다(나중엔 제주도까지 반란을 일으켜 원정길에 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싸웠다하면 이기는 최영 장군의 출세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고 나면, 전쟁이 터지고, 그 전쟁을 수습하기 위해 달려가는 생활 속에 최영은 어느덧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 고려시절 종1품직으로 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급)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뿐이던가? 그의 딸은 우왕의 와이프가 되니 말 그대로 고려의 모든 권력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간 형국이었다.

물론 그의 인생에 굴곡이 없었냐면, 그건 아니었다. 신돈 과의 갈등으로 한참 왜구를 때려잡던 1365년에 유배되었지만, 신돈이 죽자마자 바로 복귀하게 된다(1371년 복직). 이 6년의 시간을 뺀 그의 공직생활은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공신도 몇 번씩이나 해봤고, 재상도 해봤으니 신하로서 누려볼 건 다 누려본 것이 아닌가? 이런 최영이 돈에 궁했을까? 절대 궁할 리가 없었다. 전투 한번 끝내면 승리수당… 아니, 각종 포상들… 이를테면, 노비와 땅들을 챙겼으니 이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당시 재정이 넉넉지 않아 포상을 현물 대신 벼슬로 대체한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래도 명색이 최영이 아니던가?)

“뭐… 내가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할 타이밍이 나오겠어? 집안이 아쉬워, 그렇다고 벼슬이 아쉬워? 그렇다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울 아부지가 평생 와이로 먹지 말고 살라고 했는데, 그 말씀이나 지키고 사는 거지 뭐.”

그렇다. 최영은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상황도 아니었고, 할 위인도 아니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 가지가 바로 최영의 ‘지출’이다. 보통 정치군인의 길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주변 군인들을 포섭하여 자신들의 사병(私兵)으로 만들고, 집안의 재력을 총동원해 사병이나 가병들을 육성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영은 달라도 달랐다.

“평생 군문에 투신하였으나, 아는 얼굴이 서너 명에 불과하였다.”

최영 장군이 안면인식장애에 걸린 것도 아니고, 설사 안면인식장애에 걸렸다 손 치더라도 수 십 년간을 근무한 군대 안에서도 사적으로 아는 군인이 별로 없다는 건 범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군바리가 쌈만 잘하면 됐지… 괜히 오해 살 일은 안하는 게 좋아.”

강직한 군인이란 이런 것일까? 그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가 괜히 생긴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그를 반역죄로 몰아 죽인 이성계 일파조차도 최영 장군의 청렴결백과 강직함을 기록에 남겼을까?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최영 장군의 청렴결백함과 강직함은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지만, 최영 장군의 집안이 고려를 대표하는 명문거족이었으며,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아니 먹고 사는 것뿐만이 아니라 생활을 함에 있어서 전혀 부족함이 없었던 환경이었다는 사실! 여기에 더해 수 십 년간 쌓아 온 화려한 공적과 공훈에 따라오는 각종 포상 덕분에 뇌물과는 담을 쌓고 지내도 경제적으로 풍족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최영 장군을 기리는 이유는 뇌물상납과 부정비리가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절에 고고한 학처럼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정신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약간 빛이 바래긴 했지만… 그래도 고위공직자의 표상이지 않은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최영 장군은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