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진천 땅에 살던 노비 임복(林福)! 국가적인 가뭄을 맞아 구휼미 2천석을 선뜻 내놓은 그 정성에 감복한 성종은 그를 면천(免賤) 시키려 하였는데….

“그런 게 어딨슴까? 걔가 아무리 좋은 일을 했다손 치더라도 엄연히 노비 아님까? 따지고 보면, 임복 주인의 재산을 탈취하는 거랑 뭐가 다름까? 주인한테 묻지도 않고, 임복을 면천시키면, 주인은 말 그대로 재산을 국가에 강탈당하는 거 아님까?”

“야야, 내가 그냥 날로 먹겠데? 우리 남는 공익… 아니 남는 노비들 많잖아? 걔들 중 몇 명 뽑아서 교체 해주면 되잖아.”

성종의 마음은 이미 임복의 면천으로 마음이 기울어진 상황.

당시의 기록은 이렇게 나와 있다.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임복(林福)을 불러서 그 원하는 바를 묻게 하니, 임복은 그 네 아들을 면천(免賤)하여 양민(良民)이 되게 하여 주기를 청하였다.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의정부(議政府)에 의논하기를 명하니, 한명회(韓明澮)· 이극배(李克培)· 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임복이 곡식 2천 석을 바쳤으니, 1백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에 족합니다. 자원(自願)에 따라 그 아들을 양민(良民)으로 만들어 주고, 그 인원(人員)에 상당(相當)한 노비(奴婢)를 그 주인에게 보충하여 주소서.”

하였으며, 심회(沈澮)· 홍응(洪應)은 의논하기를,

“만약 곡식을 바쳐 종량(從良)하는 길을 열어 준다면 주인을 배반하는 자가 벌떼처럼 일어날 것이니, 진실로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하자, 전교하기를,

“임복의 네 아들을 모두 종량(從良)하고, 공천(公賤)으로 본주인(本主人)에게 보상(報償)해 주도록 하라.”(하략)

- 조선왕조실록 성종 16년(1485년) 7월 28일의 기록 중 발췌

임복이 자신의 아들 네 명을 양민으로 면천시켜 주기를 원했고, 성종이를 이를 들어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하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한강에 배 지나가면, 그거 티가 납니까? 뭐든지 처음이 중요하다니까요! 한번 길 터주면, 계속 이럴 거 아님까?”

“맞슴다! 앞으로도 가뭄은 계속 될 텐데, 그때마다 돈 많은 노비 놈들이 쌀 싸 짊어지고 와서 면천시켜 달라고 그러면 어떡할 겁니까?”

“나라가 절딴 납니다! 자고로 반상의 법도가 지엄한 법인데… 이렇게 노비들의 기를 살려주면, 어떻게 걔네들을 다스릴 겁니까?”

“이건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입니다!”

신하들의 압도적인 반대 속에서도 성종은 꿋꿋하게 임복 아들들의 면천을 추진하게 되는데…

“야! 양반 놈들이 곡식 한 톨 내놓는 거 봤어? 양반도 못하는 걸 노비가 했으면, 당연히 상을 줘야 할 거 아냐! 그리고, 걔가 처음부터 면천 받으려고 곡식 받친 게 아니잖아! 난 순수한 내 호의로 복이 아들들을 면천시키겠다는 거야!”

“전하, 너무 순진하신 겁니까? 아니면, 그냥 순진하신 척 하시는 겁니까?”

“이 색희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전하, 머리가 악세사리가 아니잖슴까? 머리는 생각하라고 있는 거 아닙니까. 임복이란 놈이 노림수 없이 쌀을 2천석이나 내놨겠습니까? 조선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거 하고, 나라에서 하라는 거 하라는 거 하지 말아야 돈 버는 나라 아닙니까? 우리나라 부자들 중에서 법 제대로 지켜서 돈 번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이런 상황에서 만석꾼으로 재산을 불린 임복이가 그런 잔대가리 하나 없이 덜컥 쌀을 2천석이나 내놨겠습니까? 괜히 순진한 척 하지 마시고, 그냥…”

“이색희가 보자보자 하니까 누굴 보자기로 보나… 야! 임복이가 정말 착한 마음으로 쌀을 내놨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설사 착한 맘이 아니라 노림수로 쌀을 내놨다 치자. 그걸로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이 살아났는데, 왕이 돼가지고, 이정도 기분은 내야 하는 거 아냐?”

“전하가 기분 내서 나라가 절딴 날 수도 있다니까요!”

신하들의 거듭된 반대! 그리고 성종의 결사 저항(?) 과연 이들의 줄다리기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