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냔’ ‘구느님’ ‘닷냥커플’ ‘국자커플’…

이상 열거한 단어들의 의미를 알고 있는가? 이 단어들은 자신이 얼마나 TV 팬덤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를 알려줄 척도가 된다. 이 단어들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즐길 줄 아는 이들은 TV와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패러디문화에 적응을 한 부류고,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어리둥절해 하는 이들은 아직은 패러디문화에 낯섦을 느끼는 부류다. TV를 본 후 자신의 시각으로 이를 재구성하고, 유쾌하게 비트는 패러디문화가 활짝 피었다. 이는 주로 프로그램에 애착을 느끼는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류의 문화로 성장했다.

▲패러디 전성시대

최근 온라인에서 패러디 핫 아이콘으로 떠오른 소재는 바로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극본 김순옥·연출 오세강)이다. 드라마는 지고지순한 아내였던 구은재(장서희)가 남편의 배신과 각종 시련을 겪은 후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해 남편 정교빈(변우민)에게 복수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드라마는 불륜을 비롯해 살인미수, 복수 등 자극적인 소재와 거침없는 악녀 연기를 펼치는 김서형 등 주연급의 일명 ‘버럭연기’를 앞세워 시청률 30%를 넘는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어모았고 자극적인 설정에 걸맞은 자극적인 패러디들이 온라인을 수놓고 있다.

‘애리냔’은 극중 갖가지 악행을 일삼는 김서형의 배역 신애리를 낮춰부르는 신조어다. ‘구느님’은 복수를 위해 무엇이든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구은재의 놀라운 학습능력을 찬사하는 단어다. ‘구은재’와 ‘하느님’을 조합해 단어를 만들었다. 이밖에 온라인에는 주연배우들의 버럭연기를 모아놓은 사진이 돌고 있으며, 민여사 역의 정애리가 구은재에게 죽은 자신의 딸의 모습을 입힐 때 즐겨쓰는 “우리 소희는 ○○하는 아이였어” 시리즈도 유행이다. 원래 “우리 소희는 커피 물 온도를 틀린 적이 없어” “우리 소희는 무릎 위 길이의 치마는 입지 않는 아이였어” 등의 대사였지만 누리꾼의 각색을 거쳐 소희 역 채영인의 과거 가수활동 사진 등을 올려놓으며 “우리 소희는 춤도 잘 추는 아이였어” “우리 소희는 라이브도 잘 하는 아이였어” 등으로 패러디되고 있다.

MBC 드라마 ‘에덴의 동쪽’,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 등도 누리꾼들의 놀이소재가 됐다. 이 두 드라마는 극중 연인사이에 놓이는 주인공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패러디물이 각광받는다. 누리꾼들은 송승헌·이연희 커플에게 극중 이연희의 애칭인 ‘국자’를 딴 ‘국자커플’로, 문근영·문채원 커플에게는 극중 윤복이 정향에게 닷냥을 주며 작업(?)을 거는 장면을 떠올리며 ‘닷냥커플’이란 애칭을 붙였다. 또한 MBC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지아 커플에게는 두 사람의 극중 이름 강마에·두루미에서 딴 ‘마루커플’이란 애칭이 붙었다.

▲패러디의 두가지 형식

과학기술의 발전은 패러디의 형식마저도 바꿔놓고 있다. 과거 주로 ‘합성’에 의존한 포스터 패러디 등이 유행했던 것에 이어 최근에는 동영상 플래시 파일을 이용한 일명 ‘플짤’이 대세다. 플짤은 다른 말로 ‘움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인터넷 게시판에서 글이 삭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올리는 ‘짤림방지’ 사진이 동영상 형태로 바뀐 파일을 일컫는다.

플짤시대의 대표주자는 단연 KBS ‘너는 내운명’의 강호세 역 박재정이다. 박재정은 어눌한 발음과 작위적인 연기로 발로 연기하는 것 같다는 의미의 ‘발호세’로 불리며 패러디대상 1호로 떠올랐다. 누리꾼들은 매일매일 새롭게 올라오는 그의 어색한 연기에 열광하며 갖가지 플짤을 양산했다. MBC ‘에덴의 동쪽’ 이연희는 극 초반 역시 어색한 연기로 누리꾼들의 표적이 됐다. 주로 이러한 플짤은 달리 꾸미지 않아도 재미를 주는 연기들을 모아놨다는 점에서 사진합성과는 다른 지향점을 가졌다.

하지만 합성을 앞세운 ‘짤방’세력도 그 힘은 여전하다. 최근에는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프로그램에도 팬들이 2차 저작물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MBC ‘무한도전’은 멤버들의 일상을 패러디하는 카툰들이 제작되고, KBS ‘1박2일’의 경우에도 개 상근이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가 제작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