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인 2000년, 탤런트 홍석천의 커밍아웃(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연예계를 발칵 뒤집었다. 그는 방송에서 쫓겨났고, 한때 택시도 잡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성적소수자는 루머의 대상에 불과했다. "누구가 그렇다더라"는 '카더라 통신'만 무성했다. 당연히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는 대중문화계에서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드라마 남자주인공이 동성애 성향을 밝히는 장면이 해당 배우의 격렬한 저항으로 바뀌는 일도 있었다. 성적소수자 역할은 기피대상 1호였다. 

변화의 조짐이 보인 것은 2001년. 트랜스젠더 출신의 가수 하리수가 국내를 넘어 한류스타로 떠올랐다. 이제는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성적소수자를 다루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케이블 프로그램에 동성애자가 출연하거나 이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생겼고, 공중파에서도 성적소수자들이 드라마 조연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변해오던 대중문화계는 10년 만에 톱스타들의 성적소수자 연기조차 자연스러워졌다. 10년 만에 강산이 변했다. 

영화 '왕의 남자'(2005)의 이준기는 당시만 해도 변변한 경력이 없는 신인. 신비로운 매력을 간직한 공길로 일약 스타가 됐다. 톱스타들의 성의 영역 파괴는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2007)에서 더 확실해졌다. 윤은혜에 이어 드라마 '바람의 화원'(2008)의 문근영, 영화 '미인도'(2008)의 김민선이 남장 여자로 분했다. 영화 '쌍화점'(2008)의 주진모와 조인성은 동성애 장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젊은 톱스타들이 거리낌없이 성적소수자 역할을 하는 것이 요즘 특징이다. 

억대 CF모델료를 받는 톱스타 이나영은 영화 '아빠는 여자를 좋아해'에서 트랜스젠더가 됐다. '꽃보다 남자'로 일약 아시아의 훈남이 된 이민호는 복귀작 '개인의 취향'에서 게이를 연기한다. 정일우는 연극 '뷰티풀 선데이'에서 20대 중반의 미대 대학생으로 패밀리 레스토랑 지점장을 사랑하는 게이로 카메라 앞에 선다. 

홍석천은 24일 스포츠칸과의 인터뷰에서 "커밍아웃을 한지 꼭 10년째인데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면서 "인기가 높은 이민호씨가 '개인의 취향'에서 동성애자 역할을 한다는 소식에 나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성적소수자나 새로운 성에 대한 모습이 희화화되거나, 한 부분만 강조돼 왔다. 요즘은 성적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대중들도 이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풍토가 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