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개봉한 영화 <황해>는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과 김윤석, 하정우가 다시 만난 작품이다. 극중 김윤석은 조선족 청부살인 브로커, 면가로 등장한다. 도박 빚에 쪼들리는 구남(하정우)에게 무심한 억양으로 “한국 가 사람하나 죽이고 오라”고 제안하고, 일이 틀어지자 그를 죽이려고 쫒는다. <타짜>의 아귀와 비교되는 악역이다.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김윤석을 만났다. 전날 VIP시사회 후 지인들과 술자리가 새벽까지 길어져 숙취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표정을 밝았다. 

- <황해>의 면가를 본 <타짜> 최동훈 감독의 반응은?

“‘아듀 아귀(웃음).’ 섭섭하겠다고 하더라. 아귀는 면가가 한 손으로도 죽일 수 있겠다고. 그러면서 한국 영화사상 최고 악인 캐릭터 2개에 이름을 올린 배우라고. 하하하. 참.”

- 시나리오에서 면가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은?

“고구려. 신라도 백제도 아니고 얘는 고구려다. 만주 요동반도를 점령하고 개 타고 말 장사할 때의 만주 벌판을 누리던 고구려 쪽. 대륙적인 기질을 많이 느꼈다. 이북할아버지들이 냉면집에서 계모임 같은걸 한다. 70~80대인데도 약주를 드시면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청년이다. 이북이 쎄잖나. 지금도 ‘저 간나새끼 저거 쳐 죽여버리갔어’라면서 애들이 욕하듯이 한다. 자존심 무지하게 쎄고, 자부심도 엄청나게 쎄다.”

- 면가도 쎈 인물이다. 

“난 면가를 비즈니스맨으로 본다. 이재에 밝고 스트레스 안 받고 머리도 좋다. 냉철하고 쓸데없는 군더더기 없고 평정심이 있는 사람. 족발로 애들을 때릴 때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어디를 때리고 몇 대를 때리면 죽을 것이다를 계산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 옌벤 억양이 완전히 체화됐다. 

“아직도 잘 안 빠진다. 빨리 빼야하는데…. 조선족 트레이너에게 열심히 배웠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감독이 못 알아듣겠다고 하더라. 이 영화 찍어서 옌벤에서 상영할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볼 건데, 제발 정제시켜 달라고…. 옌벤말은 너무 매력적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실례지만’ ‘외람되지만’ 같이 사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입에 발린 칭찬이 많은데 그런게 하나도 없다. 영화에서도 ‘사람하나 죽이고 와라’ ‘밥 먹었니’ ‘밥 먹자’ 이러지 않나.” 

- 인간 김윤석은 어떤 아버지인가?

“만만한 아버지. 애들이 편안해하고 일을 많이 시킨다. 인터뷰 할 때도 전화가 오는데 ‘아빠 어제 왜 안 들어왔어’ ‘일하는데 이따가 전화할게’ ‘잠깐만 잠깐만 뭐 사와’ ‘오케이 알았어’ 이런 식이다. ‘뭐’는 먹을 거다. 피곤해서 권위세울 힘이 없다. 애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버지랑 반목하는 게 제일 무섭다. 대화의 문이 닫히니까. 그 순간을 안 만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 후배 하정우와 두번 째 작업은 어땠나. 

“단점은 (하)정우가 나보다 술이 너무 쎄졌다는 것. <추격자>에서는 둘이 만나는 장면이 2번 밖에 없었다. <황해>는 내 분량이 적었지만 자주 촬영장에 갔다. 정우가 혼자 연기하는 장면이 많아서 외로울까봐. 내가 <추격자> 때 당한 거니까 쌤통이긴한데(웃음), 그 마음 알아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 <황해>는 내년 1월 베를린영화제에도 출품됐다. 

“너희는 3000억씩 들여서 카레이싱 찍는데, 우리는 가내수공업으로도 이렇게 한다고 보여주는 거다. 한국 스타일은 삯바느질부터 핸드메이드로 한다고. 그게 한국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 <추격자>나 <황해>는 살인과 폭력 장면이 많은데, <추격자>는 밸런타인데이 시즌에, <황해>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개봉한다. 얄궂은 거 아니냐. 

“아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애인 옆에 바짝 붙어 있으니 얼마나 좋나(웃음). 남녀들이 꼭 껴안고 보는 영화다. <추격자>는 밸런타인데이에 꼭 껴안고 봤을테니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인가. 틈도 없이 붙어서 심장의 고동을 듣고 서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큰 선물 같은 영화다. 새해가 밝으면서는 ‘구남이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희망도 생길 거다. 족발 집에서는 누군가 괴롭히면 족발이 무기가 될 수도 있구나라는 것도 배울 수 있다(웃음).” 

-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데, 부러운 배우가 있나?

“아. 부러운 배우(침묵). 송강호가 부럽다. 젊은 여배우들하고 많이 연기하지않나. (김)옥빈이 신세경, 이번에 이나영하고 연기한다. 나이들더니 무슨 보상하고 싶은 것 마냥(웃음). 농담이지만, 그는 그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