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에서 가장 중요한 멤버 중 한 명인 팀 브라보(51·미국)는 유니폼을 입지도 않고, 경기에 뛰지도 않는다. 경기하는 동안 더그아웃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하지만 브라보의 역할은 다저스의 그 누구보다 중요하다.

브라보는 쿠바에서 온 22살 ‘괴물 타자’ 야시엘 푸이그(21)의 선생님이다. 미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푸이그를 밤낮으로 돌보는 게 그의 일이다.

류현진의 통역을 맡는 마틴 김과는 역할이 조금 다르다. LA 타임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브라보는 푸이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 뿐 아니라 ‘개인 사감’ 역할까지 맡는다. 푸이그가 운전할 때 너무 빨리 몰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파티에 갈 때 ‘통금시간’까지 정해준다. 7년간 4200만달러나 받는, ‘부자’가 된 푸이그의 돈 씀씀이에 대한 조언도 한다.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적당하게 뽑는 법’도 가르쳤다. LA 타임스는 ‘벼락 스타’ 푸이그를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브라보의 일이라고 적었다. 실제로 거칠게 달려들며 사인을 요구하는 팬들로부터 그를 적당히 떨어뜨려놓는 일도 한다.

처음에 브라보는 푸이그의 영어교사로 구단에 고용됐다. 푸이그는 브라보를 부를 때 이름 대신 “선생님(teacher)”이라고 한다.

홈 경기일 때 브라보는 푸이그의 방 3개짜리 아파트에서 함께 잔다. 오전 6시30분부터 9시까지가 브라보의 개인 시간이다. 그동안 운동을 하거나 식료품점에 가서 장을 본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아침 9시쯤 되면 푸이그가 브라보의 방문을 두드리며 외친다. “선생님, 아침 주세요.”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친 이들은 가벼운 운동을 함께 한 후 푸이그의 유일한 사치품인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저 스타디움으로 향한다. 브라보는 경기 중에 더그아웃과 라커룸 사이의 통로에서 대기한다. 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이 푸이그에게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통역을 도와준다. 경기 후 푸이그의 기자회견이 잡히면 당연히 통역으로 나선다.

하루 종일 붙어 있다가 경기후 푸이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도 브라보의 하루는 끝나지 않는다. 푸이그의 일상생활들을 체크하고 나면 구단에 보고할 서류작업이 남는다. 브라보는 “푸이그가 때때로 새벽 2시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고 전했다.

브라보는 원래 뉴멕시코주에 있는 라스크루스 고등학교의 야구부 감독이자 특수교육 교사였다. 대학 친구인 다저스의 로건 화이트 스카우팅 팀장 추천으로 지난 6년 동안 다저스의 외국인 선수들의 적응을 돕는 일을 파트타임으로 하다 이번에 푸이그의 ‘전담 사감’을 맡았다.

온종일 푸이그를 돌보면서 자기 일은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 자녀 6명에 손자손녀 6명을 두고 있는데 눈꺼풀 밑에 암이 생긴 희귀 질병을 앓고 있는 7살짜리 막내 아들을 자주 못 만나는 게 가장 아쉽다. 브라보는 올스타 휴식기간 동안 아들과 함께 LA 인근 애너하임의 디즈니랜드에 다녀올 계획이다. 브라보는 “매일 내가 이 훌륭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 푸이그에게 감사한다”면서도 “하지만 내게는 아버지의 역할이 먼저다”라고 말했다.

푸이그에게 브라보는 선생님이 아니라 아버지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처럼 돌봐주는 브라보 덕분에 푸이그가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저스의 네드 콜레티 단장은 “완전히 다른 환경에 온 푸이그가 메이저리그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며 “브라보처럼 푸이그를 잘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