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이 시대극에 도전했다. 코믹 잔혹극 <조용한 가족> 이후 새로운 장르와 소재, 개성 강한 캐릭터를 선보인 김지운 감독이 배우 송강호와 손잡고 영화 <밀정>을 내놓았다.

김지운 감독은 소시민의 페이소스가 웃음 속에 녹아 있는 <반칙왕>, 한국 호러 영화의 전형이 된 소녀들의 아름답고 슬픈 공포 영화 <장화, 홍련>, 이병헌을 내세워 자신의 장기인 액션을 선보인 느와르 <달콤한 인생>,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만주 벌판을 누비며 ‘김치 웨스턴’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복수극의 끝판 <악마를 보았다> 등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3년 만에 한국 영화 <밀정>으로 돌아온 김지운 감독은 절망의 시대를 산 인물들의 빛과 그림자를 드라마틱하게 그린다. 송강호와 네 번째 작업을 같이 한 김지운 감독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진 이정출의 심리 변화를 좇으면서 극의 재미를 더했다. 김지운 감독과의 인연으로 특별출연한 이병헌은 짧은 분량임에도 존재감을 발휘하며 극을 풍성하게 했다.

-의열단장과 같은 영웅의 이야기보다 이정출을 택한 이유는.

“이정출을 중심에 놓은 이유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정신적인 이중국적자의 내면에 흥미를 느꼈다. 항일, 친일로 변신하는 인물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공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정채산이라는 인물이 극적이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할 수 있지만 이정출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다. 한 나라의 시스템이 정상적이지 않을 때 개인도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황옥이라는 인물이 정말로 위장잠입했는지, 밀정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인물의 마음이 궁금했다. 미국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밀정> 시나리오를 보고 시작했다. 최재원 대표가 보여준 <밀정>은 중후하고 묵직하더라. 상업성만 조금 더 가미하면 재밌는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송강호 배우가 최종적으로 캐스팅되면서 장르적 쾌감을 더해 만들었다.”

-<밀정>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지었나.

“원래 원작이 있었다. 밀정이라는 제목의 뉘앙스가 송강호와 잘 맞았다. 첩자, 간첩보다는 밀정이 의뭉스러운 송강호와 잘 맞았다. 이정출을 통해 보여주는 냉혹한면과 인간적인 느낌을 송강호가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공유를 캐스팅한 이유는.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은 신선한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우진은 영웅적인 모습이 아니다. 섬세하고 약한 느낌이지만, 임무수행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완벽하게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다소 지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장면으로는 사진 찍으면서 연계순을 보는 시선, 열차 안에서 조희령과 대면하는 장면 등에서 강해지려고 애쓰는 김우진의 모습으로 처리했다. 열차 안에서 송강호와 일대일 대화신은 정말 좋았다. 송강호와 연기 대결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자신만의 연기를 보여줬다. 송강호가 이번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공유의 연기가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패션이 돋보인다.

“의열단 행적을 찾아보니까 모두 멋쟁이들이더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늘 긴장의 연속이다. 뭔가 해소해야한다. 뭇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그런 맵시와 태를 가진 배우를 캐스팅했다. 신성록과 공유가 롱코트를 입으면 정말 아름답겠다고 생각했다.”

-정채산의 마지막 대사가 인상적이다.

“역사적으로 경무대 폭파사건은 실패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극 초반에 이정출이 ‘이 나라가 독립이 될 것 같으냐’라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출발했다. 그 시대의 한 쪽은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다른 한 쪽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실패해도 전진해야 한다. 그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왔다. 정채산의 마지막 대사 ‘우린 실패하더라도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합니다’는 무너지지 말자는 의미다.”

-고문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 인상적었다.

“밝은 사운드의 스윙재즈다. 볼레로, 슬라브 무곡 등도 사용했다 . 이 곡들은 그 시대에 나온 곡들이다. 슬라브무곡이 1900년도 초반. 볼레도도 1920년대 나왔다. 당시 미국은 미국문화가 막시작하려는 시간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암담한 시간이었다. 국치가 없었다면 미국처럼 태평성대한 시간이었다. 그 음악을 가장 비극적인 공간에 옮겼을 때 더 비극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눈에서는 슬픈 일들이 일어나는데 스윙재즈는 흥겹다. 반어적이다. 비극성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