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 2014년 2월 26일 오후 9시 20분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박모씨(61)와 큰딸 김모씨(35), 작은딸(32)이 숨진 채 발견됐다.
세 모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 사진 서울경찰청 제공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창문은 청테이프로 덮여 있었고, 그릇에는 번개탄을 피운 재가 남아있었다. 집 안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들이 키우던 고양이 한 마리는 몸을 웅크린 자세로 숨이 끊어져 있었다.
현장에서는 세 모녀가 집주인에게 남긴 메모와 현금 70만 원이 든 흰색 봉투가 발견됐다. 메모에는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들은 한 달 월세 38만 원에 전기요금 12만 원, 건강보험료 4만9000원가량을 지불했다.
세 모녀의 장례식은 쓸쓸했다. 세 모녀의 발인이 28일 서울추모공원에서 치러졌다. 숨진 박씨의 남동생은 빈소 없이 조문 절차도 생략한 채 장례를 치렀다. 남동생은 “도움을 주려 해도 누나가 괜찮다며 사양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세 모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이는 친지 등 10여 명이 전부였다.
세 모녀가 자살한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주택 반지하 방. 28일 찾은 이 집 텔레비전 위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찍은 가족사진이 놓여있었다. 사진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생활고 때문이었다. 세 모녀의 가난은 2003년 박씨의 남편이 방광암으로 숨진 뒤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석촌동으로 이사 온 가족은 외부와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생계는 박씨의 식당 일로 해결했다. 박씨의 몸이 안 좋아지면서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신청한 적도 없다. 당시 송파구 관계자는 “박씨의 나이가 60대이고, 젊은 자녀들이 있다는 점에서 설령 신청했더라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의 복지사각지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에 정부는 2015년 7월부터 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하고 저소득층 지원을 확대했다. 하지만 부양의무제로 인해 사실상 기초생활수급권이 제한될 뿐 아니라 객관적이지 않은 근로노동력평가, 재산의 소득환산 등의 문제들이 그대로 남았다.
지난 2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송파 세 모녀 3주기 복지 사각지대 피해 당사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사건이 일어난 후 3년이 지났지만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의 여건은 별로 개선된 것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증언대회에 참여한 이들에 따르면 정신 장애를 가진 30대 남성 ㄱ씨는 홀로 살고 있지만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긴급복지지원제도 수급 신청을 거절당했다. 50대 남성 ㄴ씨는 노숙 기간이 6개월을 넘는 바람에 복지 지원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송파 세모녀’ 위령제가 열린 2014년 3월 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해치마당에서 스님이 명복을 비는 바라춤을 추고 있다. 사진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3년 전 이맘때 서울 하늘에는 엷게 낀 안개가 떠나지 않았다. 흐린 하늘 아래 세 모녀는 돈이 없어서 죄송하고, 힘이 없어서 죄송했다. 이들이 죽음을 통해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지만 복지 사각지대의 신호등은 왜 여전히 빨간색일까. 가난을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사건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