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지수 5개

■수면제 지수 4개

■흥행참패 지수 3개

생각해보면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은 믿었던 것이 신뢰를 저버릴 때가 아닐까. 영화 <모놀리스>(2016년 이탈리아 개봉, 감독 이반 실베스트리니)는 ‘100% 안전하다고 믿었던 인공지능 자동차에 아이가 갇힌다면?’이라는 상상에서 기반한 스릴러물이다. 안전한 게 위험한 게 되고,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역설이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핵심이다.

극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배합하며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먼저 초반 전개는 무척이나 일상적이다. 샌드라는 두 살 배기 아들 데이빗을 인공지능 자동차 ‘모놀리스’에 태워 부모님 댁으로 향한다. 편의점에서 그가 자신의 과거(가수 힙스타즈)를 아는 의문의 남성을 만나면서 분위기는 갑자기 전환된다. 갑자기 데이빗이 사라진다거나, 친한 친구와의 통화에서 꺼림직한 분위기를 느끼는 등 불길한 징조가 계속해 제시된다. 결국 샌드라는 남편이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운다고 여기고 지름길인 우회도로로 남편이 있는 LA로 방향을 튼다.

여기에서부터는 심장이 쫄깃한 순간의 연속이다. 황무지, 고장난 차, 그리고 차에 갇힌 아기. 엄마에겐 가장 끔찍한 상황이다. 영화는 잠시 안심시켰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훅을 날리기를 반복한다. 다른 스릴러 영화와 비교해 선정성이나 시각적인 자극은 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포스러움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인공지능’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현실과의 밀접성을 높여 ‘당신에게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전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협적이다.

<모놀리스>는 최소의 등장인물로 최대의 효과를 본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주요 인물은 샌드라와 데이빗, 단 둘이다. 이외에 극을 이끄는 또 하나의 주체는 바로 인공지능 ‘릴리스’다. 운전 내내 차 안에서 샌드라와 친구처럼 대화를 이어가던 릴리스는 어느 순간부터 위험을 조성하며 극을 지배한다. 무미건조한 기계음이지만 그의 말에는 섬뜩함이 베어있다. 마치 인공지능이 범죄자인 스릴러물 같다. 사람이 등장하는 스릴러물에 지친 관객이라면 <모놀리스>를 ‘별미’로 즐겨도 좋을 것 같다.

한마디로 캐릭터의 욕구와 목표, 그리고 이를 방해하는 요소의 경계가 꽤 뚜렷한 작품이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젊은 엄마의 사투는 모성애를 자극한다. 플롯의 짜임새가 단계적이고 탄탄해 후반부로 갈수록 호기심과 기대감이 증폭된다는 게 장점이다. 극한의상황에 몰린 샌드라가 차창을 사이에 두고 데이빗에게 보내는 애틋한 눈빛,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표출하는 답답함과 분노 등은 감정이입을 높인다. 다만, 전형적인 스릴러물을 기대했던 관객에겐 실망스러운 ‘핵 고구마’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에스콰이어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배우 1위로 선정된 카트리나 보우든이 샌드라를 맡아 80분을 이끌어 간다. 20일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