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작품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기억에 잘 남는 그림들이 종종 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1 층의 마지막 방에 걸려 있는 이 그림에 도착하면 많은 분들이 “아!” 하며 반가운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아, 얘는 알아’ 하는 느낌이죠. 바로 에두아르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입니다.

이 그림은 국립 미술 작품전이었던 파리 살롱에 출품하자마자 심사위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예선탈락한 이력이 있습니다. 마네에게 그런 문제는 아주 자주 있는 터라 신기한 일도 아니긴 합니다만, 왜 그렇게 이 그림에 대해 비난이 심했던 건지 궁금해집니다.

“1866년 살롱에서 피리 부는 소년이 심사위원들에 의해 탈락했을 때 이 결정에 반박하는 글을 썼던 것이 에밀 졸라가 마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 첫 인연이었다. 이 그림은 졸라에게 있어 마네의 새로운 능력, 즉 단순화하기와 정확한 묘사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림의 배경은 아무것도 없이 단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마치 사진관 가족사진의 배경화면처럼요. 그리고 그림자도 작은 부분에서만 존재하고 거의 생략돼 있습니다. 그림에서 바지 옷감 부분에 두드러지는 질감은 잠깐 감탄이 나게 하지만,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그림이 밋밋하게 보인다는 생각까지 함께 듭니다. 이 특이한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오랫동안 그림은 평면에 ‘입체적 효과’ 가 드러나도록 애써 왔습니다. 원근법과 투시도법 같은 것들은 모두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림을 평면적으로 보이게끔 하고 있거든요.

“피리 부는 소년은 마네가 이 무렵 아무것도 없는 중립적 공간에 주인공을 배치시켰던 인물화 시리즈 중 하나이다. 마치 공기에 둘러싸인 듯한 주인공이 검은색이면서도 생동감 있는 색감의 옷을 입고 있다. 황제의 근위대 소속 유니폼과 같은 디자인을 사용해 마네는 붉은색과 노란색, 검은색과 흰색 등 강하게 대비되는 색깔을 익숙한 배치 안에 대비시킬 수 있었다. 이에 따른 강렬한 대비는 그림이 가진 강한 인상의 핵심이다.”

1865년 스페인에 도착한 마네는 스페인 바로크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처음 제대로 보게 됩니다. 이탈리아 전통을 따르는 당시 프랑스 화단과 다르게 세밀한 묘사 대신 강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스페인의 인물화들을 보고 마네는 자신도 그런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더불어 처음 개발된 사진들이 보급되면서 뭔가 실제를 똑같이 따라간다는 일이 기계의 발전에 달린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그림 또는 회화의 미학이 어디로 가야할지 새로운 고민을 한 결과, 입체적 묘사보다는 평면적이고 말 그대로 회화적인 묘사로 방향을 바꿉니다. 이 점을 두고 친구 에밀 졸라가 “생략하는 능력을 통해 선명성을 강조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겁니다.

이 정도로 단순하게 만들고 주인공을 부각시킨 솜씨를 두고 사람들은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을 무대의상까지 잘 묘사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무대의상을 소개하는 카탈로그의 그림들이 아닙니다. 이제까지의 전통과 다른 방향, 그리고 뭔가 확신을 가지고 떠나는 새로운 목표가 마네의 손에서 나온 것이죠.

인물화는 주문한 사람의 욕심이나 기념을 담고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그것과 다르죠. 이제까지 다루지 않던 인물에 대한 연구, 그리고 과감한 생략과 색의 대비 같은 도전. 바로 이 점이 후에 수많은 후배들이 마네의 선택에 동조하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새로운 방향에 대한 공감이죠.

1866년 살롱 심사위원들은 이런 현대적인 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래서 탈락시킵니다. 하지만 이는 이후에 이어지는 ‘위대한 모더니스트’라는 마네에 대한 평가에 영광을 더해 주는 에피소드가 됩니다.

미술사학자 안현배는 누구?

서양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예술사로 전공을 돌린 안현배씨는 파리1대학에서 예술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예술품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태어나게 만든 이야기와 그들을 만든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라와 언어의 다양성과 역사의 복잡함 때문에 외면해 오던 그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