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김영세와 양수경은 30년지기다. 양수경은 김영세 디자이너 앞에서 무장해제된 채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굴곡진 인생에서도 유일하게 변치 않는 우정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세 디자이너는 27년 만에 다음달 8~10일 열리는 양수경 콘서트의 모든 의상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정말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이 선생님이 여전히 옷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원래 저 결혼할 때 드레스를 해주기로 했는데 못해주셨거든요.”

김영세 디자이너를 만난 건 그녀의 나이 17세인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김영세의 위세는 여고생 양수경이 넘볼 수 없는 ‘넘사벽’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연예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셀렙’이었다.

“윤시내, 이은하, 전영록 등 당시 10대 가수들은 물론 유명 영화배우들이 선생님의 숍에 옷 좀 해달라고 찾아왔었죠. 저는 감히 옆에 가지도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큰 분이셨죠.”

양수경을 한눈에 톱스타 재목이라는 걸 알아보고 응원해준 건 그였다.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김영세 역시 늘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불미스러운 일로 디자이너로, 인간으로서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던 날이 있었다.

“수경이한테 고마웠던 건, 내가 인간이 아니었을 때 큰 목적없이 나를 도와줬다는 점이에요. 나를 다시 디자이너로 서게 만들어줬어요. 부모형제도 곁에 없을 때 이유를 막론하고 힘이 돼줬어요.”

“선생님이 어려웠을 때는 그저 전 평범한 주부였어요. 선생님 주위에는 늘 추종자들이 많았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상황이 안타까웠을 뿐이에요. 그리고 옷 자체가 작품이고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한 실력자신데 이렇게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김영세 디자이너는 양수경이 쉽게 꺼낼 수 없는 지난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대신 꺼낸다. 그녀는 묻어두려했지만 김영세는 시원하게 털고 새롭게 가자고 설득한다. 양수경은 먼저 간 동생 대신 두 조카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집이 가난했어요. 국악예고를 나와서 창을 하고 싶었는데 가수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그 길로 갔죠. 어린 나이에 큰 돈을 쥐긴 했지만 사회생활도 못했고 그 나이때 배워야 할 인간관계를 맺는 법도 몰랐어요. 그저 식구들만 알고 또 제가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죠. 그 욕심에 지금도 조카들을 챙기고 있는지도 몰라요.”

이번 콘서트는 결혼을 계기로 은퇴한 후 주부로만 살던 그녀가 사무치는 그리움에 만든 무대다.

“전 어떤 일이든 제 앞에 놓은 일들에 충실하려 했죠. 당시는 엄마 노릇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으니까, 가수 컴백은 엄두도 내지 못했죠. 무대가 그리울 때는 노래방에서 1시간 내내 노래를 부른 적도 있어요. 빨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있는 제 모습을 상상하죠. 지금 그 꿈을 실현할 순간을 앞두고 있는 거예요.”

콘서트 포스터 속 양수경은 꿈에 그리던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다음달 9·10일 양일간 벌이려던 콘서트는 좌석 예매율이 차고 넘치면서 8일 공연을 추가할 정도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녀는 자신에게 여전히 팬들이 남아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상이 나를 버린 줄 알았어요. 팬들이 남아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가슴에 슬픔과 한이 가득 찼고 풀어내고 싶어 노래로 용기를 냈는데, 20년 간 기다려준 팬들이 계시더라구요. 오늘 인터뷰에 입고온 옷도 팬들이 보내준 옷이구요. 스튜디오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으면 비타민이나 피자 같은 걸 사오시기도 해요. 마냥 웅크리고 있을 때는 세상이 차가웠는데 노래를 하니 따뜻함이 전해지더라구요. 저에게는 그분들의 추억을 훼손시키지 말아야 할 책임이 있어요. 한창 때처럼 목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를 수 있게 애쓰고 있어요.”

발성을 되찾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새로운 시도를 하라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양수경은 과거를 추억하는 팬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 나이 먹어가며 자연스럽게 세월을 보내고 싶은 소망을 내비친다. 지나간 인생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듯, 앞으로의 인생도 예측할 수 없지만 자신의 노래만큼은 영원할 거라 믿는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알겠어요? 앞으로도 몰라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내가 수없이 계획하고 공책에 써도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사람도 그래요. 누군가와 이별을 예감하고 사는 이가 있을까요? 모든 것이 갑작스런 헤어짐인데… 그저 오늘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저는 노래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럼 후회는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