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내 10여국에서 상아 불법 유통 사례가 드러나 각국 정부 관계자 및 관련 기관·단체들이 우려를 표시하고 시급한 대책을 호소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글로벌 환경보호단체 아바즈(Avvaz)는 10일 “유럽 내에서 판매 중인 상아 제품들을 표본 조사한 결과 4분의 3이 불법 품목”이라고 밝혔다.

또 “불법 상아 유통은 밀렵을 부추기고 코끼리 멸종을 앞당긴다”며 세계 각국의 긴급한 대책을 요구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아바즈는 유럽 내에서 유통 중인 상아 제품 109점을 무작위 구입해 방사선탄소연대측정법을 이용해 분석했다. 통계적 신뢰성 확보를 위해 4개월에 걸쳐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불가리아, 스페인, 아일랜드, 영국, 이탈리아, 포르투갈, 프랑스 등에서 골고루 샘플을 확보했고 연대 분석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연구진이 맡았다. 소요 예산은 전세계의 아바즈 후원자 중 5만여 명 모금해 충당됐다.

분석 결과 75% 가량은 1947년 이후 채집된 상아로 드러났다. 1947~1990년 사이 생산된 상아 제품은 정부 보증 공식 문건이 있어야만 합법적으로 거래할 수 있다. 또 약 20% 가량은 1990년 이후 죽은 코끼리에서 확보된 상아였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를 막기 위한 국제협약’(CITES)을 명백히 위반한 불법 사례다. 1973년 체결된 CITES는 1989년부터 국제적인 상아 수출과 거래를 일절 금지하고 있다.

아바즈 홍보국장 버트 원더는 “코끼리 밀렵은 계속되고 있고, 유럽 전역에서 상아 불법 유통이 성행함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환경운동가들은 “수요도 공급도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확인된 만큼, 한층 강력한 제재가 이뤄지지 않으면 코기리 멸종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1989년 CITES 협약이 본격 발효된 이후 아프리카의 코끼리 개체수가 소폭 증가세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밀렵이 계속될 경우 수십년 내 멸종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100여년 전에 1000만 마리에 달했던 코끼리는 현재 개체수가 41만여 마리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중국 내 수요 증가에 따라 아시아 코끼리도 밀렵 위험에 노출됐다.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개척 이후 피아노 건반, 옛 당구공, 장신구 등에 쓰여온 코끼리 상아는 특유의 멋스러움과 수집가들의 선호 탓에 앤티크 제품에 광범위하게 쓰여왔다. 현재도 상아가 쓰인 골동품은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 회원국 중 가장 강력한 상아 매매 규제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증명서만 있으면 상아 제품 거래가 가능해, 불법 밀렵으로 공급된 상아가 언제든 시장에 끼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윌리엄 영 왕세손도 “상아를 비롯, 코끼리와 코뿔소 밀렵을 부채질하는 제품들을 금지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에 따라 1947년 이전에 만들어진 제품들도 거래가 금지될 전망이다.

세계 최대 상아 소비국인 중국도 한층 강력한 제재에 나섰다. 중국은 2017년부로 자국 내 공식 거래점과 가공업체를 모두 폐쇄했다. 세계 최대 상아 거래 시장으로 이름난 홍콩은,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상아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의회가 지난 1월 통과시켰다. 중국과 더불어 상아 시장의 ‘큰손’이던 미국은 2016년 골동품을 제외한 모든 상아 제품 거래를 금지시킨 바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불안한 정세에 경제난이 계속되고 있고, 코끼리 밀렵과 상아 매매가 큰 돈을 벌어다주는만큼 밀렵꾼과 군벌들에 의한 코끼리 사냥이 근절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