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이 세상을 얻은 것인가, 세상이 방탄소년단을 원한 것인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스포츠경향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7일까지 11박12일 동안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콘서트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중 북미투어를 쫓았다. 지난달 28~29일 뉴어크 프루덴셜 센터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는 티켓 예매부터 전쟁이었다. 그 격정의 현장에서 열정으로 가득찬 아미를 비롯한 팬들을 직접 만났다. 6일엔 한국 가수 최초로 뉴욕 시티필드에서 벌인 콘서트를 참관했다. 이번 취재 중 뉴욕 맨해튼의 한류 성지로 꼽히는 포인트와 수많은 팬들, 빌보드지 기자 인터뷰 등을 통해 다각도로 방탄소년단의 세계 공략을 취재했다. 그 300시간의 기록 ‘하기자, BTS 신드롬 현장을 가다’를 연재한다.

⑤ 아미가 말하는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의 국제적인 성공, 특히 미국에서의 성공에 대해서는 많은 분석이 따랐다. 우선 춤과 노래가 좋다는 이야기가 그 첫째이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통을 생활화했다는 분석이 뒤 따른다. 여기에 전세계적으로 산재한 열혈 팬덤 아미(ARMY)의 열렬한 응원과 지지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멤버 슈가는 지난 서울 콘서트 직전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성공은 꼭 SNS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무엇이 아미로 하여금 방탄소년단을 지지하게 만드는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아이돌 가수가 빼어난 외모와 노래, 춤 실력까지 갖췄다면 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관계는 조금 특별하다. 이들은 단지 좋아한다, 안 한다의 기호를 떠나 신념을 공유하고 가치를 나누는 동반자와도 같다. 이 둘을 단단하게 묶어낸 건 무엇일까.

미국에서 방탄소년단을 취재하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무엇이 미국에 있는 아미를 움직이는 가’이다. 이들은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며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본 유형이 아닌 가수에게 신념을 바쳤다. 아미들을 인터뷰하면서 “BTS가 우리를 구했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BTS는 아미를 구했고, 기자는 그 답을 구하려했다. 이를 위해 많은 아미를 만났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들과 소통했고, 뉴욕과 뉴저지 인근에 있는 각종 K팝 거점들을 찾았다.

뉴저지에서 비교적 신도시인, 우리나라로 따지면 분당에 비견되는 ‘뉴포트(Newport)’를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좀 더 개인적이면서도 깊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먼저 미국사회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소득, 종교,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살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계층을 만든다. 이 사회에도 분명 ‘주류’로 존재한다. 선천적인 이유에서든 후천적이든 ‘비주류’로 낙인이 찍히거나 밀려나는 사람들도 있다.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는 특히 미국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패션블로거로 활동 중인 배리 리는 일본계 아프리칸 흑인이다. 하지만 흑인사회 내에서도 혼혈이라서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그는 8살부터 자신의 성정체성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게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사회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배리에게 말을 건넨 것은 방탄소년단이었다. 그는 “멤버 슈가는 다양한 가사와 인터뷰를 통해 ‘네가 남자든 여자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고 언제나 말해준다. 이는 내 자존감을 높여줬다”고 말했다. 함께 만난 허드슨대학에서 생물의학을 공부하는 수탄 역시 게이다. 그 역시 슈가를 거론하며 “성정체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가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 학생사회에서 한 때는 K팝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미국 주류라 자처하는 이들이 보기에 귀고리를 하고, 머리를 염색한 후 몸에 붙는 옷을 입고 나와 춤을 추는 K팝 가수들은 영락없이 ‘게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필리핀계 출신인 크리스 역시 “학교에서 놀림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 K팝이 인기가 오르자 오히려 놀리던 친구들이 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자 출신이라는 입지와 성정체성으로 고난을 겪던 이들에게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는 구원과도 같았다.

선천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누구에게나 위기와 고난은 찾아온다. 맨하탄에서 만난 아트스쿨 재학생 에일린은 마음의 병을 앓았다. 콜롬비아에서 이민을 온 에일린의 가족은 뉴욕에서도 중심인 맨하탄에 살고 있다. 가정적으로는 아무 문제없는 유복한 환경이지만 11살에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찾아왔다. 매년 겨울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고 딸의 교육을 위해 이민을 택했던 부모님의 고민도 깊어졌다. 그때 에엘린은 방탄소년단의 노래 ‘봄날’을 듣게 된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줘. 데리러 갈게”라고 읊조리는 노래는 에일린을 치유했다. 그는 지난 겨울을 방탄소년단 덕에 아픔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에일린은 “다른 가수들은 그저 멋있게 노래만 하고 끝이었지만 방탄소년단처럼 팬들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는 이들은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수많은 아미들은 이례적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방탄소년단에게 빠져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그들의 ‘메시지’였다. 방탄소년단은 10대나 20대 초반이라면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성장에 대한 불안에 대해 노래했고, 그들 스스로 내면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브루클린에서 만난 도미니크 잭은 ‘왕따’ 피해를 말했고, 타임스퀘어에서 만난 오하이오 출신의 몰리는 “뚱뚱한 몸 때문에 스스로가 미울 때가 많았다. 방탄소년단의 ‘낫 투데이(Not Today)’를 듣고 큰 위로를 얻었다”고 밝혔다.

수많은 비주류가 방탄소년단에게 치유를 받고 자존감을 회복했다. 나아가 주변에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게 했다. 그들은 사회관계망서비를 통해 서로를 알아내고 교감했으며, 오프라인에서는 ‘밋업(Meet Up)’ 등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모여 이벤트를 열었다. 이들의 이벤트는 사진 전시회, 댄스 커버 등을 시작으로 사회봉사, 기부 등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쪽으로 발전해 갔다. 뉴어크 프루덴셜 센터 앞에서 만난 미셸은 “방탄소년단이 나를 구해줬다. 삶의 힘든 시기에 그들의 음악이 됐고, 힘이 됐다. 이제는 내가 어려운 이들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을 지지하는 이들은 서로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상황을 딛고 일어나 지지를 시작했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의 그 어떤 가수도 해주지 않은 말을 한, 그들 덕에 용기를 찾은 미국의 아미들은 이제 방탄소년단의 곁을 든든히 지키는 우군이 됐다. 그들의 탄탄한 지지가 있기에 방탄소년단의 세계도전은 웬만해선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