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나 윌리엄스(16위·미국)가 2017년 호주오픈 우승과 함께 출산으로 잠시 코트를 떠난 뒤 여자 테니스계는 춘추전국시대였다. 주인공이 매번 바뀌던 혼돈의 시대가 정리되고 있다. 지난해 US오픈 우승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윌리엄스를 동경하며 자랐다는 오사카 나오미(22·4위·일본)가 주인공이다.

오사카는 지난 26일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2019 호주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페트라 크비토바(6위·체코)를 2시간27분 접전 끝에 2-1(7-6 5-7 6-4)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랭킹포인트 2000점을 확보한 오사카는 오는 28일 발표되는 세계 랭킹에서 1위에 오르게 됐다. 아시아 선수가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는 것은 남녀 통틀어 오사카가 처음이다. 또 오사카는 2015년 윌리엄스 이후 3년만에 메이저 대회 여자 단식 2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됐다.

오사카는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97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3살 때 가족과 함께 아이티 출신 조부모가 살고 있는 미국 뉴욕의 롱아일랜드로 이사한 뒤 줄곧 미국에서만 살았다. 일본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고, 일본어도 서투르다. 언니이자 역시 테니스 선수인 오사카 마리가 밖에서도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사카는 기자회견 때 일본 기자가 질문하면 통역을 거쳐 영어로 답한다. 완벽하지 않은 일본어 때문에 생길 오해를 막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오사카는 일본 국적을 택했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오사카의 아버지 레오나르도 프랑수아는 1999년 프랑스 오픈에서 윌리엄스 자매가 여자 복식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서 테니스에 매료됐고, 두 딸도 윌리엄스 자매처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딸들이 성장해가면서, 수준급 선수들이 즐비한 미국보다는 어머니를 따라 일본 국적으로 뛰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결국 아버지의 선택이 옳았던 셈이다.

오사카는 코트 밖에서도 당당했다. 오사카의 후원사인 세계적 컵라면 업체 닛신은 지난 24일 오사카에게 공식 사과했다. 닛신이 만화 ‘테니스의 왕자’ 작가 코노미 다케시에게 의뢰해 만든 애니메이션 광고에서 오사카는 실제와 달리 밝은 피부와 머리색을 가진 선수로 묘사됐다. 이 때문에 ‘화이트워싱’ 논란이 불거졌다. ‘화이트워싱’은 할리우드에서 원작에 백인이 아닌 캐릭터에도 백인 배우를 기용하는 일을 뜻한다. 닛신은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양성과 관련해 보다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오사카는 “그들이 일부러 화이트워싱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두둔하면서도 “나는 분명히 검게 그을렸다. 다음에 날 묘사할 때는 나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눴으면 한다”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오사카는 호주오픈 우승 뒤 “프랑스오픈에서도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윌리엄스의 시대와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바야흐로 오사카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