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북톡카톡 시즌2’의 히로인 홍선애. 그녀의 직업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경제와 건강, 그리고 교양 분야가 그녀의 전문영역이다. 방송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카메라 앵글 밖에서의 홍선애는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고지식함과 독서에 관한 한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조금 엉뚱한 청춘이기도 하다. 톡방의 주인장 김성신의 직업은 출판평론가다. 방송과 강연, 집필 등 온갖 수단을 통해 책의 흥미로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그는 늘 재미를 찾는다. 책에 관한 격의 없는 수다를 서평으로 기록해 보자는 ‘북톡카톡’ 칼럼도 그의 아이디어다. 책읽기가 연애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아가씨 홍선애. 꽃중년을 자처하는 수다쟁이 아저씨 김성신. 두 사람의 즐거운 책 수다, 북톡카톡 백서른여덟 번째 이야기는 ‘은막의 스타’(양해남 글 / 노기흘, 홍기영, 윤동실, 박희재, 김규홍 사진 / 눈빛)

성신: “쓸데없는 일을 잔뜩 해라!”

선애:ㅎㅎㅎ 요 며칠 사이 크게 화제가 된 어록이죠? 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요시노 아키라가 세상에 던진…

성신: 그 말이 맘에 드나?

선애: 물론 맘에 들죠.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는 그 말…. 사람들은 자신이 혹시라도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나 경계하면서 살잖아요. 그런데 그런 스트레스를 확 풀어주니까… 그래서 크게 화제가 됐다고 생각해요.

성신: 그 사람은 또 이렇게 말했잖아. “자신만의 호기심으로 새로운 현상을 열심히 찾아내는 게 필요하다. 무엇에 사용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선애: 처음부터 이익과 효율만 생각하면 시작도 못 할 일이 많을 텐데요. 무엇보다 그렇게 자기 호기심을 다 죽여놓고 살면, 참 그런 인생, 재미가 없겠어요.

성신: 요즘 세상이 지옥같이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인 듯. 이익과 효율만 중요한 세상이잖아. 심지어 사람 목숨도 효율로 생각하지.

선애: 그러고 보니 섬뜩하네요.

성신: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만들어주는 비용보다, 사고로 죽고 난 후에 돈으로 대충 때우는 게 훨씬 이익이고 효율적이다!’ 자본은 이렇게 판단하고 있는 거지.

선애: 우리가 먹고 사는 곳이 이미 지옥이었네요. 그건 악마의 판단이니까요.

성신: 물론 그렇게 대놓고 말은 안 하겠지만, 이미 우리 모두 그런 판단에 익숙하잖아? 악이 시대의 문법이 되어 우리 일상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거야.

선애: 쓸데없는 일을 잔뜩 하라는 말은 현대의 도덕률로도 의미부여를 할 수 있겠네요.

성신: 우리부터 쓸데없는 일을 잔뜩 하자고! 선애는 어떤 쓸데없는 짓을 해볼 텐가?

선애: 음… 구체적인 것은 좀 생각해봐야겠지만, 일단 나만 즐거운 그런 시시한 거 말고, 많은 사람이 함께 즐거운, 뭐 그런 걸 생각해 볼래요.

성신: ㅎㅎ 선애답네.

선애: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책 수다도 사실 ‘쓸데없는 일’ 아니던가요? 하하~

성신: ㅋㅋㅋ 그러네! 뭐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 들어가는 우리 공력에 비해 이익은 없으니까.

선애: 그런데도 재미있어서 138번이나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오늘은 무슨 책 이야기를 하시려고요? 쓸데없는 책인가요? ㅋㅋ

성신: 그건 아니고, 반대로 무지하게 쓸데 있는 책이야! 그런데, 쓸데없어 보이는 노력을 아주 아주 오랫동안 해온 끝에 만든 책이거든. 그러니까 저자의 이익과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쓸데없는데, 우리 독자들로선 엄청난 쓸모가 있는 바로 그런 책!

선애: 대체 무슨 책이기에?

성신: ‘은막의 스타 - 스틸 사진으로 보는 1960-70년대 한국영화의 명장면·명배우’라는 책이지.

선애: 영화 스틸 사진? 부제를 보니 왜 그렇게 표현하셨는지 금방 알겠네요.

성신: ㅎㅎ 응! 올해가 한국영화 100년의 해잖아? 그래서 나올 수 있었던 책이라고 할 수 있지.

선애: 왜요? 저라면 비싸도 소장하고 싶을 만한 책인데요.

성신: 채산성이 없어. 사진집에 책의 판형도 크고, 최고급 양장 제본에, 이런 책은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어가거든. 그리고 또 이 책은 공동 저작이거든. 글을 쓴 양해남 씨 외에도 한국영화기술단체협의회의 스틸작가위원회 소속 작가(노기흘, 홍기영, 윤동실, 박희재, 김규홍) 다섯분도 공동 저자니까, 책이 웬만큼 팔린다고 해도 인세를 나누면 정말 얼마 되지 않아. 저자, 출판사 모두 사명감과 지극한 마음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선애: 책값이 4만 원이나 되는데도요?

성신: 간단하게 계산해 볼게. 이 책이 2000권 정도 팔린다면 인세가 800만 원 정도겠지. 그걸 여섯 분이 나누면? 133만 원씩이겠네.

선애: 아! 정말 계산해 보니 그렇네요. 이래서 돈 계산은 정말 재미없어요.^^ 우리 얼른 책 내용이나 이야기해요.

성신: 맞아! 암튼 이 책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첫 전성기에 그 당시 영화산업에서 실제 활용된 스틸 사진들을 모았어.

선애: 흑백사진인가요? 그런데 스틸 사진이 당시에 어떻게 사용되었던 거예요?

성신: 응~ 전부 흑백사진이야. 그리고 당시의 스틸 사진은 지금의 무비 트레일러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보면 돼!

선애: 스틸 사진이 지금의 무비 트레일러였다고요?

성신: 1960~1970년대만 해도 극장 입구 진열장에 영화의 스틸 사진을 걸어놨던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호기심을 느껴서 영화표를 샀던 거지.

선애: 지금과는 위상이 달랐군요.

성신: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영화 스틸 사진이 곧 그 영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작품이었던 셈이지.

선애: 어쩐지. 가끔 옛날 영화 스틸 사진들을 보면, 완전히 예술 작품이더라고요. 역시 사진가들이 예술로서 인식을 하고 그 작업했던 거네요.

성신: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진들을 보면 바로 그 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지.

선애: 어떤 사진들이 실려 있어요?

성신: 김승호, 신영균, 신성일, 남궁원, 최무룡, 박노식, 허장강, 황해, 최은희, 김지미, 윤정희, 문희, 남정임, 황정순, 김희갑 그리고 1970년대 하이틴영화의 스타 이승현과 임예진까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빛낸 50여 명의 배우를 볼 수 있지. 또 ‘마부’ ‘로맨스 그레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만추’ 같은, 불후의 명작 속 명장면들도 볼 수 있고.

선애: 오호! 궁금해요.

성신: 그냥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타임머신 타고 어린 시절로 날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

선애: 한 시대를 풍미하던 배우분들의 젊은 시절을 보는 재미도 있겠어요

성신: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한편으론 가슴 찡한 느낌도 있어.

선애: 어떤 면에서요?

성신: 이 멋진 사진 작품을 남긴 분들을 스틸맨들이라고도 불렀다는데…

선애: 스틸맨!

성신: 지금의 영화판도 비슷하지만, 영화가 아무리 많은 관객을 동원해도 스태프들에 대한 대우는 대개 형편없잖아.

선애: 열정 페이.

성신: 하물며 1960~1970년대에는 어땠겠어.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런 혼이 담긴 사진 기록을 남겨놓았다는 거잖아? 그런 생각이 드니까 가슴이 찡하더라고.

선애: ‘은막의 스타’ 같은 책은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나와야 했던 책이군요.

성신: 응! 이 책을 기획한 양해남 씨는 한국영화 포스터 수집가로도 유명한 분인데, 이 분의 수집 의도에 나는 적극 공감해! 한마디로 ‘한국영화의 보람을 집대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선애: ‘보람을 집대성한다’는 표현이 참 절묘하네요.

성신: 내가 그냥 하는 상찬이 아니야. 양해남 씨는 자신이 수집한 귀한 영화 포스터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개하고 공유해 왔어. 거의 모든 포스터를 디지털화해서 포털 사이트에 공개하고, 웹상에 올려서 비상업적 용도로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했거든. 자신이 오랫동안 엄청난 노고와 비용을 들여 모은 자료들을 모두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토록 한 거지.

선애: ‘모으지만 움켜쥐진 않는다!’ 수집의 가장 고귀한 목적이네요.

성신: 궁극의 수집가라고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