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김창수’ 찍을 당시엔 제가 영화 소재와 주제, 인물의 무게에 눌렸어요. ‘김구’의 청년기라 제가 짊어지기엔 무겁더라고요. 흥행엔 실패했지만, 나름 그 실패한 지점의 데이터를 갖게 됐어요. 이번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에서도 그런 우를 범할 수 있는 위험도가 있었는데, 그 데이터로 딜레마를 가볍게 날릴 수 있었어요. 저, 이제 제대로 각성했습니다. 하하.”

배우 조진웅이 한층 단단해졌다. ‘대장 김창수’에 이어 ‘광대들:풍문조작단’ ‘퍼펙트맨’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에겐 뼈아프게 값진 경험이 됐다. ‘블랙머니’에서 훨훨 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여기에 정지영 감독의 디렉션이 연기력에 기름칠을 더했다.

“정지영 감독은 고발 영화의 전문가고, 전 성장형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에 적합한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론스타 소재가 무겁지만 이런 영화는 꼭 있어야 했고, 그렇다면 두 선수끼리 힘을 합쳐서 달려가보자 싶어 ‘블랙머니’ 출연을 결심했죠.”

최근 ‘스포츠경향’이 만난 조진웅은 확신에 찬 얼굴로 ‘블랙머니’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또한 배우 아닌 연출가로 단편영화를 내놓는 심경도 고백했다. 도전은, 그의 배우생활에 원동력이었다.

■“정치적 성향으로 선택? NO, 누구나 알아야 하는 사건 아닌가요”

‘블랙머니’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사건, 이른바 ‘론스타’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항간엔 정치적 성향이 깃든 영화가 아니냐며 비꼬는 시선도 있었다.

“전혀 아니죠. 정치적 색깔을 가질 수 없는 영화예요. 있었다면 이 영화는 정말 위험한 작업이었겠죠. 오히려 개성도 잃어버렸을 거고요. 론스타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 알고 있어야 하는 사건 아닌가요. 저 역시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동안 내가 왜 이 사건을 눈여겨보지 않았지?’라는 생각을 했고요. 제 세금이 저렇게 줄줄 새어나가는 건데, 지금껏 그런 각성을 못 한 거잖아요.”

자신감이 있었기에 완성도에 대한 만족감도 컸다.

“개봉 전에 제 영화를 두 번씩이나 본 건 처음이었어요. 그만큼 무거운 소재인데도 쉽게 풀었고, 일단 재밌더라고요! 하하. 정말 완벽했던 현장 덕분에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었죠.”

스태프 막내부터 감독까지 모두가 하나가 된 현장이었다고.

“구심점엔 감독이 있었어요. 경제극이라 재미와 호흡을 함께 쥐고 가는 게 정말 중요했는데, 매 장면 촬영 뒤 모니터링을 해서 잘못된 경우가 있다면 다음 날 다시 찍기도 했어요. 촬영 회차가 늘어나면 바로 제작비로 연결되는 상업 영화 현장에선 드문 경우였죠. 그걸 보면서 ‘블랙머니’ 스태프들이 하나로 의기투합하고 있구나 느꼈어요.”

호흡을 맞춘 이하늬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극 중 영어를 엄청 잘 하잖아요? 외국에서 살다왔냐고 물어보니 딱 1년 공부했대요. 노력만으로 그렇게 제대로 영어를 구사하더라고요. 에너지가 참 좋은 친구예요. 이번 작품에서도 연기까지 딱 잘해버리니, 깜짝 놀랄 수밖에요.”

■“히어로물 단편 연출 도전, 정지영 감독에게도 많이 배웠죠”

그는 이번에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히어로물 단편 영화 연출로 나서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어요. 오래 전 제가 기획했던 건데 결국 제가 연출을 하게 됐네요. ‘블랙머니’ 작업을 끝내고 촬영했던 터라, 정지영 감독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했어요. 하하. 그동안 연출가를 많이 만나긴 했지만, 등대 구실을 정확히 하고 소통 잘 하는 정 감독에게 배울 점이 많았어요. 스태프나 배우와 소통하다보면 흔들릴 수도 있는데, 정 감독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 태도를 따라하려 노력을 많이 했어요.”

메가폰을 잡는 배우로서 그가 바라는 지점도 분명 있을 터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가 되길 바라요.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요. 연출을 결정한 이유기도 하고요. 저뿐만 아니라 누구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거든요. 다 영웅이 될 수 있다고요. 잘 된다면 장편 제작으로도 이어지게 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블랙머니’가 아닌 ‘착한 돈’의 정의를 물었다.

“그런 깨끗한 돈이 세상에 있나요? 있다면 박물관에 기증할래요. 하하하. 농담이고요. 노동으로 버는 돈은 다 ‘착한 돈’이라고 생각해요. 당당하게 경제활동을 해서 번 소중한 돈이요. 노동의 가치재로 환산되어진 돈이 ‘가치 있는 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