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알고 지내는 모 선배 기자였다. “올해 유행할 성인용품 베스트 뭐 이런 것 좀 선정해줄 수 있어?” 새해를 맞이해 뭔가 ‘올해 유행할 히트 상품’ 같은 특집 기사를 쓰는데 성인용품에 관한 내용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생각해봤다. 2021년에는 업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본인은 성인문화 업계에서 녹을 먹고 있는 기획자다. 성인용품 쇼핑몰은 물론 AV 배우의 유튜브 촬영이나 제품 제작과 관련한 일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매년마다 업계에 유행을 만들거나 시장의 구조를 바꾼 사건이 있었다. 예컨대 2018년에는 여성 음부 복제 제품이 난리였다. ‘리얼로다 제니’라는 제품이 발매됐는데, ‘제니’라는 일반인 여대생이 모델로 나서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점령했다.

‘리얼로다 제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이커머스 업체 ‘쿠팡’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제니를 시작으로 ‘리얼돌녀 채로’, ‘레알터치 수아’ 등 모델을 앞세운 성인용품이 속속 발매됐다.

2019년에는 대법원의 전신 리얼돌 통관 허용 판결이 있었다. 이 사건은 청와대 청원에 올라갈 정도로 많은 논란을 낳았다. 덕분에 내 전화기에도 불이 났었다. 언론사, 여성 단체의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받았고, 심지어 다큐멘터리 촬영 팀이 만나러 오기도 했다.

해당 판결로 인해 국내에 전신 리얼돌 생산 공장이 곳곳에 세워졌다. 한국형 전신 리얼돌 브랜드도 다수 생겼다. 북미, 일본, 중국 리얼돌 회사의 총판 업체도 많아졌다. 이젠 한국에서도 손쉽게 전신 리얼돌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났다. 코로나 사태는 성인용품 시장에도 큰 타격을 줬다. 수많은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았다. 다수의 체인 매장을 갖고 있던 기업형 성인용품 회사조차도 코로나 타격을 피해가지 못했다.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업체들이 폐업 수순을 밟는 동안 온라인 쇼핑몰 중심의 기업은 오히려 기회를 맞았다. 코로나 사태를 대비해 제품 재고를 준비하고, 고객 서비스를 오히려 늘려가는 방향으로 재방문율을 상승시켰다.

그리고 2021년이 왔다. 나는 올해의 테마를 ‘미디어’로 두고 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들어봐라.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