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에서 고고학자 정기훈 역을 연기한 배우 구교환. 사진 티빙
2008년 영화 ‘아이들’로 연기를 시작한 이후 2020년 연상호 감독의 ‘반도’에 출연하기까지, 배우 구교환의 이름은 ‘가능성’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정말 많은 독립영화에 배우로 그리고 연출로 참여하면서 다재다능한 능력을 보였지만 전형적인 매력이 필요한 상업영화 이른바 대중영화에서 그 가치가 증명될지는 누구도 속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0년 ‘반도’에서 메인 빌런 서상훈 역을 한 이후 그의 인생이 빠르게 바뀌었다. 지난해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에 출연한 이후 넷플릭스 ‘킹덤:아신전’과 ‘D.P.’에도 모습을 드러내며 대중 앞에 자주 얼굴을 내비쳤다.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왠지 모르게 나사 하나 정도가 풀려나간 것 같은 나른함이 느껴진다. 그런 이미지로 구교환은 빠른 시간에 다른 배우들이 차지하지 못한 입지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그가 최근 또 다시 등장한 곳은 OTT 티빙의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다. 군인과 보위부 요원, 군탈체포조 요원 등 군과 관련한 역할을 주로 연기한 그가 맞이한 간만의 민간인 역이다. 그가 ‘괴이’에서 연기하는 정기훈은 빼어난 실력의 고고학자로 극중 배경이 되는 진양군에 귀불이 나타나 혼란이 생기자 이를 정리하고 아내 수진(신현빈)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또 다시 연상호 감독님과 함께 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항간에서는 제가 차만 탔다하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웃음) 이를 뒤집고 싶어서 결정했고요. 평소 초자연적인 것에 관심이 많고, 제작진과 동료 배우들에 대한 호감과 신뢰, 궁금증으로 참여했어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에서 고고학자 정기훈 역을 연기한 배우 구교환의 출연 장면. 사진 티빙
구교환이 했던 인물들은 지금까지 공통적으로 조직의 위계를 따라야 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독립영화부터 쌓아온, 묘하게 선을 벗어나는 분위기는 단단한 성격의 인물이 많은 직군에서 균열을 내며 이채로움을 냈다. 그리고 늘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야 했다. 이번에도 그렇다. 늘 독특한 사건에 처하는 독특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 그는 ‘독특한 사건에 처하는 평범한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D.P.(군탈체포조)의 모습이 존재할까. 고고학자라는 전형적인 모습이 존재할까. 많은 직업과 직군에 형태나 모습이 정해져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제 주변의 누군가가 고고학자라면, 그 고고학자라는 형태가 정해져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쓰레기 분리수거도 함께 하는? 그런 평범한 고고학자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반도’를 통해 주류영화계로 그를 길어올려준 연상호 감독과 다시 함께 하게 됐다. 연상호 감독은 이번 ‘괴이’에서는 작가로 참여했다. 단순히 연출자와 배우, 작가와 배우를 넘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감 그 이상의 단단한 결속이 있다.
“재회라고도 표현하시는데 자주 얼굴을 뵀습니다. 연상호 감독님 뿐 아니라 함께 했던 분들과는 작품을 떠나서도 관계를 맺고 있어요. 친하고 애틋한 마음이 있죠. 이번에 연 감독님을 또 봬서 반가웠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작품의 감독님, 스태프분들과도 마찬가지에요. 연상호 감독님은 굳이 멋을 부리지 않으세요. 멋을 표현하려고 안 하시는 게 멋있어요. 담백하고 유머러스하시면서 타고난 이야기꾼이신데 좋아하는데 따로 이유가 있을까 싶죠.”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에서 고고학자 정기훈 역을 연기한 배우 구교환. 사진 티빙
‘괴이’는 귀불의 눈을 보면 마음 속 트라우마가 자극돼 좌절이나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일어나는 일종의 심리극이기도 하다. ‘괴이’ 속 많은 인물들은 귀불에 깃든 악귀에 의해 자신의 마음 속 지옥이 살아나 실제 지옥도를 구현한다. 매번 즐거울 것 같고, 흥겨울 것 같은 구교환의 마음속에도 ‘지옥’이 있을까.
“저의 검은 지옥에서는 무생물이 나올 것 같아요. 구형 같은 것들이 저를 짓누를 거 같아요. 그런 꿈을 실제로 꾼 적이 있는데 공포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곤충들이 방어를 해주는 느낌이 있었어요. 극중 정기훈의 지옥도 표현이 되는데 마음의 깊은 곳으로 파고들다보면 여러 경우의 수가 나오겠죠. 악귀는 마지막까지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할 것 같아요. 안타까운 장면이었습니다.”
구교환은 배우활동 뿐 아니라 ‘거북이들’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 ‘오늘 영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등의 메가폰을 직접 잡은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또한 연인인 이옥섭 감독과 함께 유튜브채널 ‘2X9HD’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연출자이긴 하지만 연기할 때는 연출자로서의 감성에 선을 긋는다. 연기는 연기. 연출은 연출일 뿐이다.
“두 가지 일 다 재미가 있어서 계속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스스로 완성이 안 됐다고 보기 때문에 더욱 노력하고 있습니다. 배우로서 각광해주시면 좋고, 연출로 재밌게 봐주시면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배우의 입장에서는 선택을 받는 거잖아요. 특별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보편적인 인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에게 재미를 추구하지만 강제로 무언가를 하길 원하지 않는 사람, 의무감으로 다가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