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노희경 작가라도 이러한 기획이 되겠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들이 사는 세상’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빠담빠담’ 등의 작품이 있었지만 요즘 드라마치고는 너무 긴(?) 20부작이었고 게다가 주인공은 14명이었다. 이병헌, 신민아, 한지민, 김우빈, 차승원, 이정은, 엄정화, 김혜자, 고두심 등 화려한 캐스팅이었지만 이들의 서사가 고루 등장할 수 있을지도 의심이었다.

하지만 tvN 주말극 ‘우리들의 블루스’(이하 우블스)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조용한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한 자리수를 맴돌던 시청률은 지난 8일 10회를 기점으로 11.2%(이하 닐슨코리아 수도권기준)를 넘어서 두 자리로 가더니 3주 연속 두 자릿수를 지키고 있다. 요즘 드라마 호성적의 기준이 두 자릿수 시청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좋은 성과다.

게다가 시청률과 별개인 화제성을 측정하는 분석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집계에서 내내 상위권을 기록 중이다. 4월에는 정상에 올랐다가 현재는 JTBC 주말극 ‘나의 해방일지’에 1위를 내줬지만 그래도 2위다. 14명이 나오는 20부작 드라마에도 나름 기승전결은 필요하다. ‘우블스’가 탄력을 받게 된 데에는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조합의 힘이 컸다.

정인권 역의 박지환, 방호식 역의 최영준, 정현 역의 배현성, 방영주 역의 노윤서는 앞서 공개된 14명의 주인공 중 가장 인지도가 없던 배우들이었다. 이들은 극중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부자지간, 부녀지간이다. 인권과 호식은 친구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과거를 공유하고 있고, 현과 영주는 어린나이에 서로 사랑에 휩싸여 새 생명을 잉태했다.

애초 ‘우블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배우들의 러브스토리가 주를 이룰 줄 알았다. 그래서 차승원과 이정은의 중년 로맨스가 등장했고 이병헌과 신민아의 안타까운 만남이 있었다. 이게 사랑인지, 기만인지 알 수 없는 한지민-김우빈의 러브라인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가장 파고든 것은 바로 제주 푸릉마을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현과 영주’ ‘인권과 호식’으로 명명된 세 편의 에피소드였다.

현과 영주는 공부도 잘하는 커플이었지만 서로를 너무 사랑했다. 결국 아기를 가졌고 당황했던 두 아이는 임신중단도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용감하게 각자의 아버지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하지만 자신의 비루한 인생을 털어낼 기회로 악착같이 각자 혼자서 아들과 딸을 키웠던 인권과 호식에게 이는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었다. 이들의 세상은 무너져내렸고 하필 앙숙이자 자신의 삶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던 서로의 자녀라서 더욱 가슴을 쳤다.

물론 이는 극화된 이야기라 일상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사연이기는 하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과감하게 혼전임신, 한 부모 가정 그리고 자녀에게 꿈을 걸었던 아버지들의 한을 자연스럽게 섞으며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건드렸다. 이들의 이야기는 로맨스지만 로맨스가 아니었으며 아버지와 자녀들의 갈등이었지만 또 갈등이 아니었다. 인권과 호식으로 대표되는 서로 다른 세계의 충돌이었지만 마냥 충돌로 가지 않았다.

7회와 8회, 인권과 호식이 갈등 끝에 서로 주먹다짐을 벌이고 아기를 떼겠다고 서로 다그치는 갈등이 증폭되자 시청률도 덩달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닐슨코리아 수도권 시청률에서 8회 ‘인건과 호식 2’에서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경신했으며 이후 10%를 넘는 안정세를 지속하기 시작했다. 아직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인권과 호식, 현과 영주의 서사는 드라마의 전반기 나름의 긴장감을 상징하는 에피소드였던 것이다.

박지환은 1999년부터 연기를 시작했지만 억센 외모 덕에 주로 왈패나 조직폭력배, 형사 등으로 역할이 한정됐다. 최영준 역시 가수출신이었지만 실패를 맛보고 연극과 뮤지컬 등 무대연기로 자신을 다져왔다. 이들의 얼굴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녀의 날벼락 같은 소식에 무너져내리는 부정을 연기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경력이 아직 많지 않은 배현성과 노윤서 역시 싱그러움과 풋풋함을 겸비한 이미지로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우블스’의 화제성은 이 네 명의 배우, 뜻밖의 얼굴들에서 탄력을 받았다. 이들의 조용한 반란이 또 극에 어떤 활력을 줄지 기대하는 재미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