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영 작가의 작품이라서 무조건 한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JTBC ‘나의 해방일지’에서 아이를 키우는 이혼남 조태훈 역을 맡은 배우 이기우의 ‘최애’ 드라마는 ‘나의 아저씨’다. 그는 그 작품을 틈 날 때마다 몇 번이고 돌려 봤다 .

자신의 인생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쓴 박해영 작가의 작품 ‘나의 해방일지’ 캐스팅 제안을 받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락했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난 이기우는 “김석윤 연출이 첫 미팅에서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나의 아저씨’에서 스님 정도의 비중’이라고 말씀하시더라. 분량은 상관없었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박해영 작가의 작품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조태훈은 대사보다는 감정으로 표현하는 캐릭터다. 어린시절 부모를 잃은 상처가 어린 딸에게 이어질까 노심초사한다. 두 팔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은 어린 조태훈의 트라우마가 엄마의 빈자리 때문에 한 팔을 잃어버린 듯한 상처를 딸에게 주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며 하루 하루 살아간다.

“처음부터 태훈의 캐릭터에 대해 김석윤 연출과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힘을 빼달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태훈은 주저리 주저리 말을 많이 하는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출연 분량에 비해 대사도 많지 않구요. 표정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친구 중에 태훈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떠오르더라구요. 예전에는 밝은 친구였는데 그런 상황이 되니까 표정도 없어지더군요. 그 친구를 떠올리며 연기했습니다.”

시청자들의 눈엔 태훈은 아리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마음껏 표현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행복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기정의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멍하니 벽에 기대고 있는 장면에서는 시청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전해오기도 했다.

“요즘 본방을 사수하면서 댓글을 가끔 봅니다. 제 인스타그램에도 많은 시청자들이 댓글을 달아줘요. 코로나19 시국에서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한 시청자가 종이에 싸인 임플란트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7년만에 연락 온 친구도 있습니다. 직장인들도 의견을 많이 남겼구요. 그런 댓글을 보면서 ‘나의 해방일지’는 시청자들과 맞닿아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기우가 출연하는 장면과는 반대로 상대역 기정의 식구들이 모이는 장면은 시끌벅적하다. 특히 배우 이민기가 맡은 창희는 속사포 같은 대사가 많다.

“부럽더라구요. 해방클럽 멤버들은 카페에서 마주보지 않고 창밖을 보고 있잖아요. 반면에 창희, 기정, 미정의 식구는 작은 상에 머리를 맞대고 모여요. 그런 점에서 이민기 배우가 부럽더라구요. 창희 캐릭터를 너무 멋드러지게 연기했잖아요. 창희를 보며 나도 저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촬영이 진행되면서 점점 태훈이와 닮아가고 있더라”면서 “평소 잘 웃는 편인데 태훈을 연기하면서 촬영장에서도 점점 말이 없어졌다”며 태훈을 닮아가는 자신을 밝견했다고 고백했다. 그런 자신에게 도움을 준 것은 실제로도 기정처럼 씩씩한 배우 이엘이었다.

“기정과 약속을 잡은 날 주차한 차를 빼달라는 전화에 약속장소와 꽤 거리가 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달려온 태훈에게 기정이 ‘1분만 쉬라’고 하는데, 그 말에 태훈의 감정이 흔들립니다. 태훈은 이혼 후 쉼 없이 달려오다 12년만에 처음 쉬라는 소리를 들은거예요. 그런 태훈에게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은 기정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리액션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현장에서도 기정 역을 맡은 이엘 배우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훤칠한 키에 훈남 이미지인 그는 영화 ‘클래식’을 통해 연기활동을 시작해 ‘꽃미남 라면가게’라는 인생작을 만나 뭇 여성들의 마음을 오랜시간 훔쳐왔다. 그런 그가 의외로 여배우 울렁증을 고백했다.

“사실 저는 여배우 울렁증이 있습니다. 형제만 있는 가정에서 자라다보니 여성들의 심리를 잘 모르겠더라구요. 첫 상대역이 손예진 배우였습니다. 이후에도 여배우들과 연기를 많이 했는데 쉽게 고쳐치지 않더라구요. 이엘 배우의 씩씩하고 밝은 성격에 편안하게 촬영했습니다.”

‘나의 해방일지’는 이기우에게 또 하나의 의미있는 작품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태훈 역을 연기할 수 있어 너무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김석윤 연출을 보면서 멋진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멋진 어른, 사람냄새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