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0주년을 맞은 KBO리그. 그동안 수많은 스타와 레전드들이 탄생했다. 무려 20시즌을 현역으로 뛴 우완투수 최영필(48)도 레전드라 할 수 있을까. 마흔을 넘긴 나이에 KIA에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해 ‘불사조’라는 별명이 붙은 최영필은 KBO 역대 최고령 등록 선수 2위(2017년 42세8개월18일)에 올라 있다. 1위는 송진우(2009년 42세11개월15일)다. 2017년 은퇴 후 KT에서 2군·재활군 코치 생활을 하다 지난달 용인예술과학대(옛 송담대) 야구부 감독이 된 최영필을 지난 19일 용인에서 만났다.

송진우 다음 역대 최고령 선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최영필은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 그냥 오래 했을 뿐이다. 대단한 기록을 세운 것도 아니고, 자유계약선수(FA) 대박을 친 것도 아니다. 제자나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젊고 힘이 있을 때 잘해서 돈도 많이 벌고 짧더라도 굵게 하라. 나처럼 긴 시간 버티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힘든 길이다.”

1997년 현대에 입단한 최영필은 20시즌 동안 4개의 유니폼을 입었다. 현대(1997~2000), 한화(2001~2010), SK(2012~2013), KIA(2014~2017). 선수 생활의 큰 고비는 두 차례 있었다. 2010시즌 뒤 FA 미아가 된 최영필은 2011년 일본 독립리그를 택했고, 이듬해 SK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복귀했다. 그러나 2013년 또 방출된다. 모교인 경희대에서 인스트럭터로 지내다 2014년 KIA에 입단 테스트를 보고 신고선수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가 이미 마흔을 넘긴 나이였지만,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2014~2016 세 시즌 동안 평균자책 3.22 13승 34홀드를 기록했다. 최영필은 불펜 투수라는 보직이 확정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했다.

“한화 때까지는 전천후 보직을 맡았다. 선발이나 중간, 마무리 다 원래 투수가 구멍이 나면 메우는 역할이었다. 아마 그런 능력 때문에 오래 선수 생활을 한 것일 수 있지만 SK와 KIA에서 뛸 때는 온전히 불펜만 담당했다. 제가 2번 방출됐던 기간들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바닥을 친 상태, 더 떨어질 게 없어 긴장이나 두려움이 없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게임에 나가서 한 타자 한 타자 상대할 때 마음 편했다.”

그는 특히 나이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짧고 굵게’ 활약하는 것보다 ‘길고 가늘게’ 뛰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다.

“서른 중반을 넘어서는 계속 나이 얘기를 들었다. 이대호나 추신수처럼 나이에 비해 대단한 활약을 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나이를 먹고 선수 생활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주변 시선과 싸울 수밖에 없다. 나이를 먹었다고 슬럼프가 없는 건 아닌데, 조금만 기록이 떨어지면 ‘컨디션 안 좋구나’가 아니라 ‘이제 다 됐구나’라고 생각한다. 항상 편견과 싸워야 했다. 더 인내해야 하고 더 관리에 신경 써야 했다.”

최영필은 KBO리그만 549경기에 출전했다. 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을까.

“KIA에서 처음 마운드에 오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4년 6월 신고선수로 등록하고 오른 첫 경기로 NC전이었다. 마흔한 살이었는데 긴장되긴 했다. 다행히 안타 없이 홀드를 기록한 거로 기억한다(웃음).”

KIA 복귀 후 세 시즌을 활약한 그는 2017년 다시 고비를 맞았고, 그해 6월 9일 은퇴했다.

“그 나이(43세)에 엔트리 차지하고, 게임에 나가려면 다른 선수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한 타자, 한 이닝도 못 막으면 은퇴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 과감히 은퇴를 결정했다.”

최영필은 유독 우승 반지와 인연이 적었다. 최영필이 은퇴한 2017년 KIA는 8년 만에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반지 하나 껴보고 은퇴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아쉽긴 했다. 그래도 마지막 4년을 KIA에서 선수 생활해 KIA 팬덤을 경험해 좋았다. 실제 경험해보니 어마어마했다. KIA에서 뛸 때부터 사람들도 많이 알아봐 주셨다.”

그래도 우승 반지와 인연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1998년 현대가 우승할 때 반지를 받긴 했다. 당시 (좌타자가 많던) LG가 상대여서 좌완투수가 필요하다고 해 한국시리즈 엔트리 빠졌는데 주장이던 김경기 선배가 제 것까지 챙겨줬다. (KT 재활군 코치로 있던) 작년에도 KT 우승 이후 구단에서 2군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위해 따로 제작해서 선물해줬다.”

은퇴 이후 KT 2군·재활군 투수코치로 지내던 최영필은 지난달 7일 용인예술과학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용인예술과학대는 지난해 창단한 신생팀이다.

“아마추어 야구에 관심이 있었다. 아들도 운동을 했고, 매년 비활동 기간 경희대 전지훈련 등을 따라다니며 대학 야구를 봐왔다. 그러다 감독 채용 공고를 봤고, 제가 직접 훈련을 진행하면 좋은 선수가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지원하게 됐다. KT와 계약 기간 중이었는데 정중히 말씀드렸고, 구단에서도 감독으로 가는 거라 흔쾌히 허락해줬다.”

감독으로 부임한 지 한 달. 짧은 기간이지만 팀 분위기는 달라졌다. 용인예술과학대 야구부 주장 배한준은 “감독님 오신 뒤 선수들 사이에서 ‘해보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졌다”며 “졸업반이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바뀐 팀 분위기는 성적으로 이어졌다. 지난 1일 열린 제77회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용인예술과학대는 4연승을 거두며 ‘신흥 강호’로 급부상했다.

“부임하고 2주 밖에 시간이 없었다. 개개인 능력치를 올리는 데 집중해 대회를 치렀다. 아쉬움이 많지만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줘 16강 진출이라는 나름의 쾌거를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최영필은 프로에서 못다 한 제대로 된 우승의 꿈을 대학야구 감독으로 이루겠다고 밝혔다.

“프로에서 안 됐으니 여기에서 도전해봐야죠. 선수들 스카우트도 적극적으로 많이 하겠다. 야구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선수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지원했으면 좋겠다. 다 같이 좋은 경험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

수많은 대학팀 중 용인예술과학대만의 장점이 있을까. 최영필은 무엇보다 단체 훈련을 충분히 할 수 있는 환경을 장점으로 꼽았다.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가장 좋지 않나 생각한다. 프로와 달리 대학 야구에서 제일 큰 문제는 훈련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오전으로 강의를 몰고, 주중에도 오후 단체 훈련을 할 수 있다. 금요일은 온종일 훈련한다. 저뿐 아니라 야수 지도하는 김도형 코치는 KT 운영팀 출신이라 영상 분석에 능하다. 다른 학교와 달리 선수들 장단점을 분석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을 것이다.”

최근 야구계의 가장 큰 화두는 ‘위기론’이다. 국제 대회 성적이 부진하고 즐길 거리가 다양화하며 야구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최영필은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아마추어 야구에 관심을 더 둬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의 젖줄인 아마추어가 활성화되고 살아나야 한다. 대학보다 고교야구에만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데 인구 감소로 고교야구도 결국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KBO가 대학 쪽에 더 관심 가져주고 지명 할당 폭을 넓혀 활성화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야구는 OO이다’에 들어갈 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었고, ‘불사조’다운 답을 들었다.

“야구는 꾸준함인 것 같다. 지속적인 반복 훈련, 끊임없는 루틴 반복이 야구다. 꾸준함으로 천재를 이길 수는 없지만, 천재를 따라갈 수는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