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37·울산)은 한국 축구의 골잡이 계보를 잇는 대형 스트라이커다. 브라질에서 축구를 배운 박주영은 한국을 넘어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을 누비며 기량을 뽐냈다. 언제나 화제를 몰고다니던 그는 올해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으면서 이례적으로 조연이 됐다.

박주영의 올해 정규리그 출전 기록은 단 6경기. 이조차 선발로 뛴 경기는 1경기가 전부였고, 공격 포인트는 전무했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지만 오히려 박주영의 얼굴에선 웃음꽃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는 지난 23일 울산이 K리그1 우승컵을 들어올린 현장에서 기자와 만나 “올해 내 목표는 홍명보 감독님에게 우승컵을 안겨드리는 것이었다”며 “그 목표대로 마무리하니 즐겁다”고 말했다.

박주영이 조연도 반긴 것은 10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인연을 맺은 홍 감독과 해피엔딩을 바랐기 때문이다. 과거 그는 홍 감독의 배려 아래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고 병역기피 의혹을 극복했는데, 이번엔 반대로 울산에서 홍 감독에게 우승컵을 선물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지난해 울산에 부임한 홍 감독은 그해 준우승에 그쳤다.

박주영의 진심은 올해 울산에서 보여준 행동에서 잘 드러난다. 2005년 FC서울에서 데뷔해 17년차인 베테랑이 울산 클럽하우스의 사감 아닌 사감을 자처했다. 훈련의 시작과 끝에 항상 그가 있었고, 훈련이 끝난 뒤에는 경기를 못 뛰는 후배들의 끼니까지 책임졌다.

박주영은 “내가 지금껏 뛰었던 다른 구단보다 시설이 너무 좋았다. 어린 선수들도 많으니 즐겁게 지냈고,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큰 의미는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주영의 노력이 올해 울산이 성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클럽하우스가 북적거린 배경인 것도 사실이었다. 박주영은 “팀이 졌을 때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힘들었는데,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려고 일부러 웃었다. 다른 선수들도 잘 따라줬다”고 떠올렸다.

홍 감독도 우승 직후 박주영을 포함해 베테랑의 헌신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들, 그중에서도 베테랑”이라며 “그들의 노력이 정말로 위대한 일을 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박)주영이가 (우승컵을 안기겠다는) 약속을 지켜준 것이 고맙다”고 덧붙였다.

박주영의 백의종군은 축구 선수로 자신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타고난 재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했던 과거와 달리 이젠 후배들과 나누는 법을 배우고 있다.

박주영의 고민은 언제 축구화를 벗을지만 남았다. 그는 올해 울산과 단년 계약을 맺었는데, 오롯이 자신의 결정에 따라 현역과 은퇴를 결정짓게 된다. 울산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박)주영이가 계속 뛰기만 바랄 뿐”이라고 귀띔했다.

박주영은 스승에게 우승컵을 안기는 목표를 이룬 만큼 축구선수로 마지막은 가족과 자신의 가슴에 묻기로 했다. 그는 이미 프로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인 A라이선스까지 갖춘 상태다.

박주영은 “나에게 은퇴의 기준은 하나”라며 “볼을 차는 게 좋으면 더 하는 것이고, 그만하고 싶으면 그만해야 한다. 가족과 상의해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