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규(37·키움)는 KT와 지난 준플레이오프에서 기록을 세웠다. 5차전까지 치르는 동안 4개의 희생번트를 성공했다. 박진만(당시 현대)이 1996년 기록한 역대 준플레이오프 최다 희생번트 타이 기록이다.

지난 25일 LG와 플레이오프 2차전의 4회초 무사 1루 세번째 타석의 포수 희생번트까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이용규는 5개의 번트를 기록하고 있다. 모두 벤치에서 사인이 나왔고 이용규는 100% 성공시켰다. 보내기 번트는 간단해 보여도 절대 쉽지가 않다.

포스트시즌 들어 이용규는 2번 타순에 주로 나서고 있다. 이용규는 “내 앞에서 주자가 나가다보니 나한테 작전이 자주 나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올해 정규시즌에서 이용규의 희생번트는 1개였다. 포스트시즌에 들어오자 팀이 원하는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키움이 승리한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용규는 4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을 올렸다. 2안타 모두 LG 선발 애덤 플럿코에게서 뽑았다. 1회 1사후 직구에 중전안타로 나가 선제 득점하고, 2-0으로 앞선 2회 2사 2·3루에서는 체인지업에 우전 적시타를 쳐 4-0을 만들었다. 둘 다 초구를 쳤다.

이용규는 ‘용규놀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KBO리그에서 가장 투수를 피곤하게 하는 타자다. 역대 한 타자 상대 최다 연속 투구 기록(2010년 현대 박준수·20구)을 만들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만 37세인 올해도 이용규의 정규시즌 타석당 투구 수는 4.42개로 리그 전체 2위였으나, 2차전에서 이용규는 ‘용규놀이’ 없이 오히려 초구에 승부를 했다.

이용규는 “플럿코 상대 올해 네 타석밖에 하지 않았는데 데이터상 직구와 컷패스트볼에 스트라이크를 많이 먹었다. 그래서 첫 타석에는 빠른 공만 생각했고 감이 좀 좋았는지 공이 눈에 보여 방망이가 나갔다”며 “두번째 타석에서는 대기타석에서 보니 플럿코가 (앞 타자) 김준완에게 3B-1S에서도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았다. 전 타석에 내가 직구 타이밍에 쳤기 때문에 두번째 타석에서는 체인지업이나 커브가 들어올 것으로 생각했다. 스트라이크존 안에만 들어오면 치자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잘 나왔다”고 말했다. 데이터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전 타석과 앞 타자를 상대하는 상대 투수를 유심히 보고 계산한 베테랑 타자의 노하우다.

국가대표 외야수이기도 했던 이용규는 데뷔 이후 늘 주전 외야수로 뛰었다. 그러나 올시즌 후반기 부상당했다가 복귀한 뒤로는 지명타자 혹은 교체 선수로 뛰었다. 이번 가을야구에서도 이용규는 지명타자다. “수비를 안 하고 가만 있다가 나가는 게 힘들다”고 했던 이용규는 2차전 6회말을 마친 뒤 더그아웃 미팅을 가졌다. 수비를 마치고 들어온 야수들이 전부 이용규의 주위로 모였다. 6-0으로 앞서다 5회말 4점을 내줘 7-6, 1점 차까지 쫓기기 시작한 뒤였다.

이용규는 “지명타자를 하다보니 더그아웃에 계속 있는데, 분위기가 우리가 분명 앞서 있는데 마치 지고 있는 팀 같았다. 그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우리가 이기고 있다. 투수들이 3이닝 잘 막아줄 거다. 타석에서 뭔가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자신있게 돌리자’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용규는 키움이 와일드카드 2경기를 치르고 가을야구에서 물러난 지난해에도 마지막 타석까지 투수를 괴롭히고 전력으로 뛰는 모습으로 주목 받았다. 탈락 직후, 홍원기 키움 감독은 “이용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최고참의 솔선수범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올해 가을에도, 프로 19년차 이용규는 그동안 딱 한 번밖에 못 가본 한국시리즈 무대를 다시 밟아보고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주어진대로 하다보니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데일리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용규는 정규시즌을 타율 0.199로 마쳤다. 데뷔 이후 경험해본 적 없는 낯선 성적이었다. 그럼에도 젊은 선수들이 가득한 키움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용규의 경험을 앞세워 가을야구 선봉에 세웠고, 이용규는 팀의 필요에 맞춰 자신을 바꾸고 있다. “가을야구에는 개인 성적이 없다”고 말하는 베테랑 이용규의 가을야구가 절정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