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프로야구 10개 구단 단장들이 모인 KBO 실행위원회에서 두산은 ‘대체 외인선수제’ 도입을 제안했다. 당시 두산의 목소리는 다른 9개구단 단장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두산만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제도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두산은 새 외국인투수 딜런 파일이 호주 시드니 캠프에서 머리에 타구를 맞은 여파로 훈련을 중단하면서 새 시즌 개막에 맞춰 대체 선발 자원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체 외인선수제’는 구단 재량에 따라 일정 기간 ‘파트타임’ 외국인선수를 구해 쓰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올해 두산의 경우라면, 딜런 파일이 골타박상으로 1군 등록이 어려운 기간 동안 ‘기간제 외국인선수’와 계약할 수 있도록 제도로 보장하는 내용이 될 수 있다. 구단 입장에서는 뛰지 못하는 외국인선수의 회복 추이를 살피면서도, 외국인선수 자리 하나를 비워두지 않아도 되는 운영이 가능해진다.

지난 3월 공허했던 두산의 외침이 개막 이후로는 조금은 달리 해석되는 분위기다. 외국인투수 부상으로 시즌 초반 선발 운용에 문제가 생긴 구단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SSG가 스프링캠프 기간 어깨 통증으로 피칭을 멈춘 새 외국인투수 에니 로메로의 이탈 속에 시즌을 맞았고, NC 또한 새 외국인투수 테일러 와이드너가 허리부상으로 시범경기 등판에 차질을 빚은 뒤로 선발 한 자리에 아쉬움이 생겼다. 한화는 올시즌 1선발로 믿고 내세운 외국인투수 버치 스미스가 지난 1일 키움과 고척 개막전에서 등판 도중 어깨 부위 불편함을 느껴 자진 강판하며 시즌 초반 투수 운용에 어려움이 생겼다.

이미 시즌은 시작됐다. 시즌 중 새롭게 제도를 만들어 시행할 수는 없다. 다만 취지에 공감하는 구단들이 늘어나면서 내년 시즌 시행을 목표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KBO 관계자는 “지난 3월 관련 얘기가 나왔을 때는 시즌 개막을 앞둔 시점이어서 실효성 있는 논의 자체가 어려웠지만, 내년 시즌 도입 여부를 놓고는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프로야구 구조상 외국인투수들이 각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도 크다. 지난 시즌의 경우, 리그 전체 선발승으로 444승이 기록된 가운데 외국인투수들이 거둔 승수는 38.1%에 해당하는 169승에 이르렀다. 겨우내 시즌 준비를 착실히 하고도 외국인투수 부상으로 시즌 전체 계획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기본 취지로는 당초 두산의 제안에 귀를 여는 구단들이 나오고 있다. 다만 방법론적으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A구단의 단장은 “‘대체 외국인선수제’보다는 육성형 외국인선수 제도가 훨씬 더 실효성이 있어보인다”며 “가령, 시즌 개막 이후 외국인선수가 다쳤을 경우에는 대체 외국인선수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2군에서 육성형 외국인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면 적어도 바로 1군 자리를 메운다는 취지에 더 적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B구단 단장은 “선수협회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지금의 3명 보유·3명 등록제를, 5명 보유·3명 등록으로 하든지 보유 자체에 제한을 두지 않는 폭넓은 접근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외국인선수 제도의 변화 필요성을 거론하는 구단들은 현재 1군 4명 등록에 보유 선수 수는 구단 재량에 맡긴 일본프로야구 외국인선수 제도를 한국프로야구에 맞게 변형하자는 것으로 해석될 만도 하다.

일본프로야구는 외국인선수 보유 수가 무제한이지만, 자국 선수 육성에 문제를 보이는 리그는 아니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따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올시즌을 거치며 외국인선수 제도는 조금 더 뜨겁게 논의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미 물밑에서는 ‘무제한 토론’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