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가 1994년 이후 29년 만에 감격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지난 13일 밤이다. 정확히 말하면 14일 새벽으로 진입하는 시간. LG 선수단은 거창한 축승회 대신 잠실야구장 인근 한 고깃집에서 조촐한 자축 회식을 했다.

지도자와 선수 간에도 소주 한 잔씩이 오가는 훈훈한 분위기에서 함덕주가 차명석 단장 곁을 찾았다. 차 단장 손에 들린 잔에 정성껏 소주를 따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때문에 비난을 많이 받으셔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시간 동안) 단장님이 단 한번도 저한테 싫은 내색이나 어두운 표정을 보이지 않으셔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차 단장은 대화를 이어갔다.

“덕주야, 난, 항상 덕주 네가 잘할 것으로 믿었다. 네 덕분에 올해 우승할 수 있었다.”

차 단장은 지난 17일 공개된 스포츠경향 야구전문 영상 채널 ‘최강볼펜’과 인터뷰에서 이날 에피소드 한 토막을 소개했다. 영상 인터뷰에는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 함덕주가 차 단장과 마주한 자리에서 “이제는 정말 LG에 남고 싶고, LG가 좋습니다”라는 뜻을 전한 내용도 담겼다.

감동의 물결이 소주잔을 넘실대던 중에 차 단장과 함덕주 사이에 깊은 대화가 오가는 것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또 다른 ‘FA’ 임찬규가 슬쩍 나타난 모양. 차 단장은 특유의 코믹 코드를 곁들여 그 옆에 있던 임찬규가 “(덕주한테) 속지 마세요. 저부터 계약하고 움직이셔야 한다”고 농담을 한 당시 분위기도 덤으로 소개했다.

차 단장은 ‘최강볼펜’과의 관련 인터뷰에서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의 덕주가 그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함덕주가 없었으면 올해 우승이 힘들었을 것”이라는 격려와 고마움도 전했다.

사실, 2021년 두산에서 LG로 이적한 함덕주는 지난 2년간 LG에는 ‘아픈 이름’ 중 하나였다. 선발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적한 첫해 괜찮은 출발을 하는 듯했지만, 부상이 이어지며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사이, 두산으로 맞트레이드됐던 양석환이 타석에서 펄펄 날며 LG의 상처는 더욱 도드라져 보인 시간이었다. 더구나 지난 2년간 LG는 사실상 외국인타자 부재의 시간을 보낸 터여서 떠나 보낸 ‘거포’ 양석환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진 세월이었다.

함덕주는 올시즌 완벽히 부활했다. 옛모습으로 돌아왔다기보다는 진화했다. 정규시즌 57경기에 등판해 4승 4세이브 16홀드에 평균자책 1.62를 기록하며 불펜투수로 전천후 활약을 했다. 정규시즌 막판 팔꿈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합류하며 통합 우승 완성의 알토란 역할을 해냈다.

함덕주는 LG의 내년 시즌을 위해서도 당연히 필요한 자원이다. LG에서도 같은 시각으로 협상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방 한 팀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전해진다. 함덕주 진로에는 변수도 도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