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같은 단기전에서는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 역할 하나하나가 선명하다. LG의 역전 우승으로 끝난 2023 한국시리즈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활용법’이 모호해 보이는 투수 한 명은 있었다. LG 좌완 손주영(25)은 엔트리 발표 시점에서부터 보직 자체가 불투명했던 가운데 한국시리즈에서 KT와 5차전까지 벌이는 동안 아예 등판이 없었다.

등판할 만한 상황이 있을 법도 했다. 1점 차 접전으로 흐른 2차전과 3차전에서 경기가 정규이닝을 지나 초장기 연장 승부로 이어졌다면 누구라도 보직 구분 없이 불펜에서 대기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2차전과 3차전에서는 선발투수 조기 강판으로 LG는 정규이닝 후반 주요 불펜진을 거의 소모했다.

손주영은 지난해 4월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을 받은 뒤 재활을 거쳐 지난 9월 1군 무대에 복귀했다. 1군 경기 3차례 등판한 가운데 선발로 2차례, 구원으로 1차례 나왔다. 이력을 보자면 한국시리즈 같은 큰 무대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계투진으로 마운드에 서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에 벤치에서는 기본적으로 연장 승부 등 변수에 대비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덧붙여 손주영에게 기대한 또 하나의 보직은 ‘섀도 선발’이었다.

김경태 LG 투수코치는 지난주 스포츠경향 야구 전문 영상 채널 ‘최강볼펜’에 출연해 LG의 한국시리즈 투수진 에피소드를 전하며 손주영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손주영은 케이시 켈리와 최원태, 임찬규, 김윤식으로 이어진 LG의 한국시리즈 4선발 가운데 누군가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깜짝 선발’로 투입될 가능성이 있었다,

김 코치는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SK가 그해 신인이던 김광현을 4차전 깜짝 카드로 꺼내서 시리즈 흐름을 바꾼 적이 있다. 그런 장면들을 다시 살피면서 감독님과 여러 상황에 대비했다”고 전했다.

예컨대 LG는 1차전을 놓친 뒤 2, 3차전 중 한 경기를 더 내주면 4차전에 켈리를 다시 투입할 준비를 했다. 켈리의 등판일을 당긴 뒤 5차전 이후 로테이션을 재구성한다는 것이었는데, 이 경우 6차전에 손주영을 내는 것을 검토했다는 내용이다.

LG 벤치에서 손주영 선발 카드를 만지작거리게 된 이유는, 손주영이 지난 10월19일 이천 훈련이 시작된 뒤 한국시리즈 준비 과정에서 보인 경기력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다. LG는 청백전으로 실전 감각을 조율했는데, 손주영은 등판 때마다 인상적인 볼을 던졌다는 평가다. 손주영을 공을 타석에서 보고 대응한 LG 타자들의 평가가 특히 높았다.

한국시리즈는 끝났다. 손주영은 1구도 던지지 않았다.

궁금해지는 것은 손주영의 내년 시즌이다. 키 191㎝의 장신 좌완 손주영은 각이 좋은 패스트볼을 던진다. 부상 직전인 지난 해 4월6일 고척 키움전에서는 6이닝 2안타 1실점의 쾌투를 한 적도 있는데 그때보다 구위가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게 팀내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손주영은 선발 후보로 내년 2월 스프링캠프를 맞는다. LG가 가장 목말라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