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절리 잔도와 고석정 꽃길에 이어 이번엔 물윗길이다.

강원도 철원을 찾는 관광객은 겨울에도 인산인해다. 겨울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그 발길은 꼬리를 문다. 겨울 발길이 닿은 곳은 물윗길이다. 태봉대교에서 시작해 순담계곡까지 꽝꽝 언 한탄강 물 위와 물 갓길을 오가며 이어지는 8㎞는 ‘눈높이 여행’의 새로운 방점이 됐다. 부교 구간은 2㎞이고 육로 구간은 6㎞다.

눈높이 여행은 그간 봐왔던 철원 풍광과 달리, 물윗길 여행에서 볼 수 있는 파노라마가 생경하기 그지없다. 눈높이가 다르니 감동도 다르다. 잔도(한탄강 주상절리길, 높은 절벽 옆에 낸 길)가 주마간산이라면 물윗길 탐방은 속살 여행이다. 물윗길 트레킹은 철원 여행의 또 다른 시작이다. 겨울에만 즐길 수 있으니 계절 특화 상품이기도 하다. 물윗길로 철원은 동토를 벗고 겨울 여행의 동트는 새벽을 맞았다. 더불어 쇠둘레(철원) 기름진 벌 유서 깊은 터전이 품은 여행지는 어디가 또 있을까?

그간 철원 여행에서 만난 한탄강 물소리는 주상절리에서 맥놀이 된 장쾌한 메아리였다. 물윗길 트레킹에서는 주상절리 잔도 여행과 다른 소리가 들린다. 물윗길에선 얼음 사이를 비집고 속삭이는 잔물결의 속삭임이 귀를 간질인다. 아주 오래전 이 동네 아이들이, 사람들이 발들일 수 없는 바위 벼랑을 기어 내려와 밤낚시를 즐기며 나눈 귀엣말을 닮았다.

그날 만난 손바닥만 한 모래톱은, 아무나 올 수 없으니 그들에겐 소도였다. 수십 년 만에 일반 탐방객에게 그들만의 비밀 아지트를 내어주었다. 물윗길이 아니면 닿을 수 없는 길을 걷는다. 그때 이름 붙였던 손모아·얼굴·마당 바위가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걷던 길을 잠시 쉬며 살펴볼 곳도 있다. 지금은 차량이 통제된 승일교다. 이 다리는 과거 철원 동송읍과 갈말읍을 연결하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그 교각을 쳐다보면 한국전쟁 중 양측이 공방전을 벌이며 남북이 나누어서 지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승일교는 남북합작 다리다. 교각의 수가 다리를 반으로 나누어 보면 확실히 차이가 난다. 한쪽의 교각은 8개요 다른 쪽은 4개다. 이 탓에 한동안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을 엮어 승일교라 지었다는 풍문도 있었다. 최근 다리의 역사에 대한 사료를 근거로 한국전쟁의 영웅인 전쟁 실종자 ‘박승일’ 대령의 이름에서 다리의 이름을 땄다는 얘기가 정설로 굳혀지고 있다.

물윗길은 잔도의 출발지인 순담계곡까지 이어진다. 총거리(시간으로는 1시간 30분~2시간)가 부담이라면 은하수대교와 승일교 등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다만 승일교~순담계곡까지는 ‘닥치고 직진’이니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물윗길 중간 ‘쉼터’에서는 붕어빵·어묵 등 주전부리를 먹을 수 있는 매점도 있다. 승일교 인근에는 얼음 조각 포토존 등을 만날 수 있다. 중간중간에 자신만의 소원돌탑을 세워 여행의 의미를 더할 수도 있다.

물윗길의 이용 시간은 3월 31일까지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입장 마감은 오후 4시)다. 매주 화요일은 휴무다. 물윗길 탐방비 1만 원을 내면, 5000원짜리 철원사랑상품권을 나누어 준다.

해외 명소 부럽지 않은 비경과 짜릿함을 선사하는 철원한탄강주상절리길은 개방 이후 인기가 끊이지 않았다. 물윗길 출구가 잔도의 입구다.

이 길은 유네스코가 인증한 한탄강지질공원 순담-드르니 구간에 조성된 길로, 총 길이 3.6㎞에 이른다. 잔도를 거닐며 화산활동이 만든 한탄강 일대의 독특한 지형을 감상할 수 있다. 이때 모습은 재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마그마가 식어 굳으면 만들어졌다. 그 돌덩이도 시간과 풍파에 못 이겨 부피가 줄어들고 금이 생겨 켜켜이 쌓인 듯한 지형이 됐다. 주상절리다.

교량 13개, 스카이전망대 3곳, 전망쉼터 10곳을 설치해 전망과 아슬아슬한 재미를 만끽하고, 각자 체력에 맞게 걷기와 휴식을 조절하도록 했다. 이 길은 출입구가 2곳이라, 출발지로 돌아가려면 차를 이용하거나 걸어야 한다. 전자는 주말과 공휴일에 양쪽 매표소를 왕복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평일에는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이때 입장료 지불시 받은 철원사랑상품권을 내도 된다.

입장료(어른 1만 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를 내면 절반 정도를 철원사랑상품권(어른 5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으로 돌려준다. 입장 시간은 오전 9시~오후 4시, 동절기(12월 1일~이듬해 2월 28일, 올해는 29일)에는 오후 3시에 마감된다. 매주 화요일은 휴무다.

고석정(孤石亭)은 철원 8경 중 하나로, 철원 제일의 명승지이다. 한탄강 한복판에 치솟은 바위산의 양쪽 사이로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른다. 신라 진평왕 때 한탄강 중류에 10평 정도의 2층 누각을 세워 고석정이라 불렀다. 이 말은 이후 정자와 고석바위 주변의 계곡을 통칭해 쓰여왔다.

철원은 추가령구조대(서울과 원산으로 이어지는 침식 계곡)의 중심에 있다. 이곳은 신생대 제4기 빙하기인 홍적세(160만~1만 년 전)에 현무암 분출로 이루어진 용암대지로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한탄강이 흐르면서 침식 활동을 벌이며 ‘열일’을 해 곳곳에 화강암 주상절리와 수직 절벽을 만들었다. 비경에 비적에 대한 전설이 더해지면 스토리텔링도 비할 곳이 없기 마련이다. 그 자리를 비집고 의적 임꺽정(林巨正, ?~1562)의 고사가 끼어들었다. 역사책에 한 줄 나온 그는 신출귀몰한 능력으로 철원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았다.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고석정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정사가 아니라 바로 이 야사다. 고석정은 임꺽정의 배경지가 됐다. 임꺽정은 당시 함경도 지방으로부터 이곳을 통과해 조정에 상납할 조공물을 탈취한 도적이지만, 그것을 빈민 구제에 쓰는 등 부패한 사회에 항거한 의적이라 전해진다. 더 극적인 것은 관군이 임꺽정을 잡으러 오면 이곳에서 많이 잡히는 꺽지로 변신해 물속에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하니, 귀신도 곡할 그의 능력에 현대엔 관군이 아니라 새 영웅을 찾는 마블 히어로 팀이 오랏줄이 아니라 돈다발을 들고 찾아올 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도 강 중앙에 있는 20m 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했다는 자연 석실이 있고 건너편에는 석성이 남아 있다. 이곳은 풍치가 수려해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국민 관광지이다.

고석정 누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됐는데, 1971년 지방 유지들이 나서 10평의 2층 누각 형식의 정자를 다시 복원했다. 1996년 수해로 또다시 유실됐지만 1997년 재건축됐다.

이곳에서 상류로 약 2㎞ 지점에 직탕폭포가 있고 하류 약 2㎞ 지점에 순담계곡이 있다. 고석정은 넓은 잔디광장과 다목적 운동장 등이 있어 사시사철 어느 때나 관광객이 찾기 편하고, 인근에 게르마늄 온천탕(한탄리버스파호텔)이 있어 여독을 풀기도 그만이다. 또한 한탄강관광사업소(구 철의 삼각 전적지 관리사무소)가 있어 사계절 안보관광과 겨울철에는 철새 관광도 함께 할 수 있는 관광의 최적지이다.

계절풍만 한반도를 유랑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가르쳐준 바 없을 텐데, 그들은 이맘때 어김없이 철원을 찾아온다. 흑두루미, 두루미, 청둥오리, 기러기와 독수리까지. 청명한 가을 하늘을 채우고, 가을걷이 끝난 이 겨울 들녘에서 담소를 나누는 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맘때 철원의 하늘은 기러기, 청둥오리들의 하늘 군무로 소란스럽다. 요즘 철새는 수선스럽다? 예전 저들 선배들은 부산을 떨지 않았다. 너른 철원평야에 추수 때 떨어진 나락을 주워 먹느라, 철새들의 하늘 비상은 남의 일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볏짚을 축산 사료로 쓰기 위해 하얀 비닐(마시멜로를 닮았다)로 이삭 하나 남기지 않고 확 말아 놓는 통에, 저들의 삶도 궁핍해졌다. 먹을 게 없으니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식량 보급 투쟁’를 벌어야 하는 운명에 이 뜰 저 논을 부지런히 찾아 헤맨다. 이 광경은 역으로 철원 겨울 하늘의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운이 좋으면 안개 낀 런던 골목길의 가스등 아래 서 있는 암울한 분위기의 양복 신사를 닮은, 그 자태 고고한 수백의 독수리 떼도 만날 수 있다. 눈 쌓인 민통선 인근 철원평야를 차로 달리다 보면 두루미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고라니와도 경주를 벌일 때도 있다.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 따로 없다. 조용한 생태 관찰을 원하는 방문객들은 양지리 탐조대를 이용하면 된다.

이곳 말고도 돌아볼 곳은 많다. 잔도나 물윗길 탐방 후, 1~2시간 정도 여유시간이 있다면 철원 역사문화공원(소이산 모노레일)과 철원 도피안사(국보인 고려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층탑이 있다)를 묶어서 들러봐도 좋다. 여유시간이 1시간 정도라면 차를 신철원 쪽으로 틀어 삼부연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3곳 모두 입장료는 없다.

물윗길 등 올겨울 철원을 찾은 탐방객에 대해 철원군의회 박기준 의장은 “철원군을 지난해 천만 관광 도시로 발돋움하게 해주셔서, 찾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