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영화 ‘파묘’가 1000만 관객을 돌파(24일 기준)한 가운데, ‘K-오컬트’에 대한 국내외 팬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악령, 빙의 등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오컬트 장르에 풍수지리, 무속신앙, 민간설화 등 한국적 문화 요소가 녹아들면서 K-오컬트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 K-오컬트는 KBS2 드라마 ‘전설의 고향’, 영화 ‘구미호’와 같은 작품을 통해 역사를 이어왔다.

과거 ‘납량특집’ ‘처녀귀신’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하거나 ‘마이너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K-오컬트는 다양하고 탄탄해진 스토리와 CG등 기술 발달로 인해 높은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됐고, OTT 플랫폼이 확산으로 인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묘’와 같은 수준 높은 한국형 오컬트는 하루 아침에 이뤄낸 성과가 아니다.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은 지난 2015년 ‘검은 사제들’로 한국형 오컬트의 서막을 열었다. ‘꽃미남 배우’ 강동원과 ‘연기파 배우’김윤석을 구마사제로 내세우고, 당시 신인배우이던 박소담이 악마의 숙주 역할로 소름끼치는 연기를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다.‘검은 사제들’은 소재가 주는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열연과 높은 완성도로 54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듬해 5월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은 난해한 K-오컬트 장르로 국민적 신드롬을 일으킨 그야말로 ‘레전드’ 작품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영혼을 취하는 악귀와 마을 수호신의 대결, 여기에 보이는 것만 믿고 혼란에 빠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한계 등을 이야기한다. 곽도원이 시골 마을의 경찰, 황정민이 무당 역을 맡아 이야기를 끌어가며,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긴장감과 공포감을 자아낸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그놈은 그냥 미끼를 던져 분 것이고” 등의 대사는 여전히 화자되며 쓰이고 있다.

이후 2018년 OCN 드라마 ‘손 the guest’은 인간에 빙의해 범죄를 저지르는 악귀 ‘손’을 쫓는 형사와 구마사제의 이야기로, 2020년 초 방송된 tvN ‘방법’ 은 무당의 딸로 이름, 사진, 소지품으로 죽음에 이르는 저주 ‘방법’을 갖고 있는 10대 소녀의 이야기로 각각 한국의 샤머니즘과 사회범죄를 다루며 매니아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엔 ‘방법’의 스핀오프가 제작되기도 했다.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쓴 영화 ‘방법: 재차의’는 주술사의 조종을 받는 한국형 좀비 ‘재차의’가 사람들을 습격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해외 좀비와 달리 스피드가 빠르기로 유명한 K-좀비가 등장하며 공포감이 업그레이드 됐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해 여름 큰 화제를 모은 SBS 드라마 ‘악귀’ 는 K-오컬트가 지상파 방송에서 큰 인기를 모아 눈길을 끌었다. 악귀에 씐 평범한 이십대 여자와 그 악귀를 볼 수 있는 대학교수가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귀신 들린 구산영을 연기한 김태리는 실제 ‘귀신이 들린 듯한’ 연기로 지난해 SBS연기대상을 거머쥐었다.

2024년 K-오컬트의 글로벌 히트를 미리 예감한 이들도 있다. 넷플릭스 인기작마다 출연해 글로벌 스타로 자리매김한 박희순과 김현주는 올 초 공개한 ‘선산’을 통해 K-오컬트물의 글로벌 인기를 견인했다. ‘선산’은 존재조차 모르던 작은 아버지의 죽음 후 남겨진 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지금을 사는 이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곱씹게 하고, 주인공 윤서하(김현주 역)를 통해 대한민국 교수 임용 문화 등을 꼬집는다.

‘파묘’ 역시 일제강점기를 겪고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대한민국만의 특징이 대중에게 실질적인 공포를 심어주며 성공의 포인트가 됐다. 또 역사적 이유로 작은 땅덩이에 불교, 천주교, 기독교, 사이비 종교까지 여러 종교가 모여 평화롭게 살고 있는(것 처럼 보이는) 우리네 모습도 장례 문화와 고영근(유해진 역)의 대사 등을 통해 보여주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방법:재차의’와 ‘선산’ 각본을 쓴 연상호 감독은 아시아의 요괴나 괴담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얘기를 끊임없이 고민해 온 인물이다. 그는 ‘선산’에 대해 “10년 전부터 품어온 이야기”라며 “선산을 소재로 종교와 무속적 색채를 넣으면 긴장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