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변양균, 조연 김모씨, 스턴트맨 S, 엑스트라 다수의 기자.

17일 오전 1시께 서울 한복판에서 한편의 영화가 촬영됐다. 일명 ‘택시5’. 러닝타임 65분짜리 단편영화다.

이날 새벽에 벌어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기자들의 50분간에 걸친 추격전은 완벽한 하나의 스펙터클 무비다.

0시35분 모범택시 기사 S씨에게 호출전화가 떨어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서울 마포구 서부지검 인근 하나은행 앞에 택시가 서자 한 남자가 보조석에 올라탔다. 15분간 이어지는 침묵, 그리고 차가 출발한다.

0시50분 차가 서부지검에 들어서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흐른다. 검찰청 현관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 기자들이다. 그들이 연방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자 운전사 S씨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잠시 후 변전실장이 기자의 숲을 헤치고 황급히 택시 뒷자리에 올라탄다.

그리고 택시는 검찰청사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서대문 쪽으로 향한다. 그 사이 신문·방송사 차 10여대도 우르르 청사를 빠져 나온다. 밤 1시쯤 본격전으로 자동차 추격신이 시작된다.

잠시 후 서대문에서 농협을 앞두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택시는 몇 바퀴 가는가 싶더니 급선회에 다시 서대문을 향하다 또다시 유턴해 서울역 방향으로 쏜살같이 내뺀다. 우왕좌왕하는 10여대의 취재기자 차량. 택시는 그야말로 무법차량이다. 신호등이나 차선은 무조건 무시다.

하지만 경력 십수년의 언론사 취재차량 기사도 베테랑답게 서울역까지 따라붙는다. 차는 다시 후암동 쪽을 통해 남산으로 올라간다. 이때 시간이 1시10분. 그곳에서 이곳저곳을 숨가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택시. 하지만 좀처럼 취재차량을 따돌리지 못한다.

결국 남산을 내려온 택시는 다시 청파동 쪽 숙대입구역을 향한다. 물론 신호는 무조건 무시다. 그때 남영역 인근에서 택시가 멈춘다. 이때가 새벽 1시25분.

그러나 변전실장은 언제 대기해 놓았는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오피러스로 보이는 흰색 승용차에 올라타고 다시 용산 방향으로 바람처럼 내달린다. 앞서 S씨에게는 3만원이 전해진다. 어림잡아 시속 120㎞는 될 듯한 속력. 뒤따르던 언론사 기자들이 겁을 먹기 시작한다. 잘못하다가 취재 중 ‘순직’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

그러나 변전실장을 태운 승용차는 동작대교를 향해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여전히 신호등은 안중에도 없다. 결국 대부분의 취재차량은 이수역 부근에서 차를 멈추고 만다. 변전실장이 탄 차는 방배 쪽으로 빠진 듯하지만, 이미 수차례 대형사고의 아찔한 순간을 모면한 취재기자들은 가슴만 쓸어내린다. 이때 시계는 1시40분을 가리키고 있다.

변전실장의 새벽 추격전에 나섰던 한 기자는 “신호·속도 단속 카메라를 미처 신경쓰지 못해 수십만원대의 벌금이 나올 것 같다”며 “오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런 추격전은 벌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간밤의 추격전에 나선 것을 후회했다.

〈엄민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