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비수기가 지속 중인 11월 둘째주 극장가에는 한국 영화가 한편도 새로 개봉되지 않는다. 그 대신 오락성과 작품성을 골고루 겸비한 외화들이 영화팬들을 찾아간다. 개봉 전부터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에로틱 멜로물 ‘색, 계’와 잘 짜인 미스터리 스릴러의 전범이 될 만한 ‘더 버터플라이’가 관객들을 유혹한다.

▲‘색, 계’, 스릴 넘친 첩보물에 애절한 사랑

‘색, 계’는 단순히 실연 논란을 일으킨 후반부 20여분간의 정사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장아이린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스릴 넘치는 첩보물이며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강렬한 멜로물이다.

먼저 평범한 삶을 살던 여대생 왕치아즈(탕웨이)가 스파이가 돼 친일파 이선생(양조위) 암살 작전에 투입되는 과정이 긴박감 넘치게 펼쳐진다. 그러면서 신분을 위장한 여자 스파이와 그녀의 표적이라는 긴장감 넘치는 관계로 만난 두 사람이 차츰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을 느끼게 되는 모습이 애틋하면서 강렬하게 그려진다.

정사신은 말로써 속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두 남녀가 속마음을 소통하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굉장히 폭력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말초 신경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 절박한 심정의 두 남녀의 애절한 감정이 느껴져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양조위와 신인 탕웨이의 연기는 압권이다. 양조위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다 운명적으로 찾아온 사랑으로 인해 흔들리는 남성의 감성을 탁월하게 형상화해낸다. 그러나 양조위의 연기력이 뛰어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신인 탕웨이가 더욱 눈길을 끈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반짝반짝 빛난다. 첫 영화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격렬한 정사신에서도 복잡한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이렇게 ‘색, 계’는 단순히 예술 영화로만 치부할 수 없다. 성인 관객들이 오랜만에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에로틱 멜로물이다.

▲‘더 버터플라이’, 잘 짜인 스릴러가 주는 쾌감

‘더 버터플라이’는 배우들의 인지도 때문에 눈여겨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제라드 버틀러와 피어스 브로스넌 모두 한국에서 알려져 있는 배우지만 한번에 눈길을 끌 만큼 인기가 높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의외의 수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미를 담보한다. 마이클 바커 감독은 94분 러닝 타임 내내 관객들이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미스터리 스릴러는 이래야 한다’고 보여주듯이 미스터리 스릴러가 줄 수 있는 최대의 쾌감을 안겨준다.

영화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는 광고 회사 중역 닐(제라드 버틀러)이 의문의 남자 라이언에게 딸을 납치당한 후 24시간 동안 펼치는 피 말리는 대결을 그린다. 라이언은 불가능할 것만 같은 5가지 요구 조건을 내걸고 닐은 딸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벗고 악역에 도전한 피어스 브로스넌의 열연이 돋보인다.

‘더 버터플라이’에서 다루는 유괴극은 사실 이제 다소 식상한 소재다. 이제까지의 유괴극들이 범인을 숨기고 ‘그가 누군지’ 찾아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범인을 알려주고 그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를 그려간다. 영화 결말부 반전은 나름대로 신선하다. ‘더 버터플라이’는 스릴러 영화 팬이라면 만족도가 무척 높을 작품이다.

〈최재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