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농공상(士農工商). 글을 읽는 선비가 가장 훌륭하고 다음으로 훌륭한 직업은 농부, 장인, 그리고 장사꾼 순이다. 이런 구시대적 직업의식이 여전히 지금도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이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직업 귀천 의식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장홍근 박사가 지난 7∼8월 한국과 미국, 일본, 독일 4개국을 대상으로 각국의 취업자 1200명에 대해 직업의식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주요 직업에 대한 평가인 ‘직업위세’ 격차가 가장 컸다고 20일 밝혔다.

직업위세는 어떤 직업의 권위와 중요성, 가치 등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평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격차가 클수록 직업 귀천의식이 심한 것을 의미한다.

이 조사결과 한국의 직업위세는 1.56∼4.21점으로 그 격차가 가장 넓었다. 이에 비해 미국의 직업위세(기준 1∼5점) 범위는 2.72∼3.82점, 일본은 1.77∼3.88점, 독일은 1.61∼3.77점 등으로 비교적 직업위세의 폭이 크지 않아 직업의 귀천 의식이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직업의 귀천을 가장 따지지 않는 국가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직업별 직업위세를 살펴보면 국회의원이 4.21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약사(3.76점), 중·고교사(3.67점), 소프트웨어개발자(3.39점) 등 순으로 나타났다. 음식점종업원(1.77점)과 건설일용근로자(1.56점)는 최하위권으로 나타나 전통적인 사농공상 의식이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정치, 혹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거센 데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이 가장 위세가 높은 직업으로 꼽힌 것이 이채롭다. 직업위세가 직업의 권위나 중요성, 존경 인식 정도를 종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에 대한 우리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기계공학엔지니어, 약사 등 이공계 직업이 위세가 센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개발자, 약사, 중소기업 간부의 직업위세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도 의회의원이 직업의 위세가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돼 동양권에서 정치인이 가장 직업위세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에서 3위를 차지, 상위권에 오른 중·고교사는 미국과 독일, 일본 모두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음식점 종사자와 건설일용근로자는 미국과 독일에서도 하위권에 평가되고 있다.

삶의 만족도에 대한 질문에 미국이 75.3점(100점 만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독일(74.8점) 순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66.6점으로 일본(57.99점)보다 앞섰다.

〈박효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