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지난 2일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예선 일본전에서 선보인 ‘위장 선발 라인업’을 두고 말이 많다. 경기 당일 양국은 관행대로 경기 시작 1시간여 전에 선발 명단을 교환했다. 여기에 한국은 선발투수로 류제국과 1·2번 타순에 이종욱·이대형을 배치했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 교환한 선발 라인업에는 선발 전병호와 1·2번 정근우·고영민 등으로 바뀌어 적혀 있었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을 비롯한 일본 벤치는 적잖이 당황했다. 호시노 감독은 이를 항의했지만 주심은 규정에 어긋난 것이 없다고 무시했다.

▲논의 과정

공식 라인업은 경기 시작 바로 전에 교환하는 게 국제야구연맹(IBAF)의 규정이다.

하지만 30분 전까지 임시라인업(provisional line－up)도 제출하도록 돼 있다. 이는 교체가 가능한 정보제공용이다. 이번 대회 요강의 임시라인업은 1시간 전에 제출해야 한다.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해 지난달 30일 한국·일본·대만·필리핀 감독이 모인 감독 회의에서 대회 심판위원장에게 질문했다.

대표팀의 박정근 매니저는 “2개의 라인업 중에 어떤 것이 공식적인 것이냐”고 물은 뒤 “그렇다면 임시 라인업(1시간 전)과 공식 라인업(시작 전)이 달라도 상관없느냐”고 재차 질문했다.

심판위원장의 답은 “달라도 상관없다”였다. 이는 일본 호시노 감독이 두 눈을 뜨고 지켜보는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호시노 감독은 2일 한국전 뒤 ‘위장 선발 라인업’에 대해 “감독 회의, 심판 회의 등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는 규정”이라며 “(한국이) 왜 그런 행위를 했는지 설명을 해달라”고 얼굴을 붉혔다.

▲결론은 합법

엄밀히 말해 한국은 대회 규정을 정확히 알았고 제대로 이용했다. 그날 경기에서 ‘위장 선발 라인업’의 효과를 보기도 했다. 1회초 전병호의 등장에 당황한 일본 타자들이 삼자범퇴하며 흔들렸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경기 후 “아마추어 규정에 잘못된 것이 있다”고 애매하게 말을 했다. 잘못된 규정을 이용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이어 “상대방도 그렇게 할 수 있으니 우리도 속으면 안 되니까 위장 선발 라인업을 제출했다”며 “호시노 감독도 이를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으로부터도 배울 게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일본야구에 만연된 위장 선발 전술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반응은 부정적

한 일본기자는 “만약 일본이 졌다면 상대 전력 분석과 대회 규정의 숙지가 없이 ‘호시노 재팬’만 외쳤던 일본대표팀이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한국의 꼼수에 실망했다는 반응이었다.

세계의 아마추어 경기를 수차례 지켜봤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분위기도 좋지는 않았다. 이번 대회를 찾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규정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스포츠맨십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IBAF에서 벌금을 물릴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감독은 3일 필리핀전을 치르고 나서 한 일본 기자에게 위장 선발에 대한 질문을 또 받아 얼굴을 붉혀야 했다.

이에 김감독은 “양심을 걸고 위장 오더를 낸 적이 없다. 정직하고 깨끗하게 야구를 하려 했다”며 “다만 나는 아마추어룰을 잘 모른다. 이는 감독 회의에서 결정한 것이고 호시노 감독도 있는 그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타이중|김관기자 kwan@kyunghyang.com〉